위성과 드론이 하늘을 뒤덮는 최첨단 기술 시대에 때아닌 ‘군용 풍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군대가 감시·통신·정찰을 목적으로 18세기부터 쓰던 열기구를 다시 도입하면서, 저비용·고효율 전장(戰場) 자산으로 재부상한 것이다. 중국이 최근 잇따라 정찰 풍선을 띄우자, 이에 대항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4월 미 육군은 방산 업체 10곳과 정찰과 통신에 쓰는 저(低)고도 체공형 감시 기구인 ‘에어로스탯(aerostat) 풍선’을 업그레이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42억달러(약 5조9000억원)다. 지난해 미군은 태평양에서 격년으로 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에서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전자기 스펙트럼 센서를 실은 정찰 열기구를 성층권까지 띄워 신형 정밀 타격 미사일(PSM)을 이동 중인 함선으로 유도한 것이다.
◇때아닌 ‘군용 풍선’의 부활
미군만 군사용 풍선을 다시금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폴란드는 지난 5월 러시아의 미사일과 군용기 탐지를 위한 조기 경보 레이더망 구축 차원에서 9억6000만달러(약 1조3700억원)를 투입해 미국산 에어로스탯 4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접경 지대에 로켓 탐지용 풍선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 장거리 비행을 위한 신호 중계기로 풍선을 활용하고 있다.이른바 ‘풍선 전술’을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1783년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발명하자 주요국은 군사적으로 쓰는 방안을 추진했다. 11년 후인 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수소 열기구를 전장에 띄워 오스트리아군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본격적으로 군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 남북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차 세계대전에서도 풍선은 종종 정찰·통신 수단으로 활용됐다.
풍선이 군사용 정찰·통신 수단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항공기와 위성 시대가 열리면서 풍선을 비롯한 열기구는 점차 쓰임새를 잃었다. 적의 비행을 방해하는 ‘방해 기구(barrage balloon)’ 정도로만 간혹 쓰였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최근이다. 줄에 묶인 대형 풍선 형태의 플랫폼인 ‘에어로스탯’, 고고도(高高度) 풍선 등을 군대에서 잇따라 사용한 것이다. 다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와 ‘효율성’에 있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 뿐 아니라 회수해서 다시 쓸 수도 있다. 소음이 작고, 풍선에 실은 탐지 장비가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보통 3~5㎞ 상공에 띄우는 ‘에어로스탯’은 저공 비행하는 미사일이나 드론을 탐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보다 비용이 싼 데다, 몇 주에 걸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고고도 풍선은 이보다 높은 성층권(24~37㎞)에 띄운다. 묶인 줄 없이 자유 비행하는 방식이다. 위성보다 낮고, 여객기보다는 높은 곳에 띄워 통신 감청을 하거나 고해상도 촬영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풍향을 분석해 장기간 특정 지역 상공에 머무를 수도 있다.
취약한 점도 있다. 성층권에선 강풍에 휘말리기 쉽다. 이 때문에 정밀 조종이 까다롭다. 풍선에 각종 장비를 실어도 작은 태양광 패널에만 의존해 운용하다 보면 전력이 부족해 연결이 끊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칫하면 외교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사고 우려도 있다. 2015년 미국에서는 연결선이 끊긴 군 에어로스탯 하나가 150㎞ 밖으로 날아가 주민들을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中 ‘정찰 풍선’ 견제용으로 늘어나
군용 풍선이 최근 급속히 늘어나게 된 데는 중국의 영향도 있다. 2023년 2월엔 버스 한 대 크기의 중국 풍선이 며칠간 미국 상공을 떠돌다 전투기에 격추된 적이 있다. 미국은 정찰 풍선으로 의심했지만, 중국은 과학 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또한 최근 수년간 대만해협 상공에도 이런 풍선을 100개 이상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도 최근 멕시코 국경 마약 밀수 감시, 푸에르토리코 해상 불법 운송 탐지 등에도 풍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풍선을 동시에 잔뜩 띄워 목표 탐지·타격 유도망을 구성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무장 드론을 기구에 매달아 적 후방에 투하하는 방식까지 검토 중이다. 미 의회도 지난 7월 통과된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5000만달러(약 702억원)를 배정, 성층권 열기구 실험을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