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가 알코올 흡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알코올 흡수를 늦춰 덜 취하게 만들고, 알코올에 대한 갈망도 줄어들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가 더 진척되면, 향후엔 알코올중독 위험을 줄이는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프랄린 생명의학 연구소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15일 발표했다. 체질량 지수(BMI) 30 이상인 고도비만 환자 20명을 모아서 진행한 소규모 예비 연구다.
연구팀은 환자들을 공복 상태에서 만나 모두에게 똑같은 간식을 먹게 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참가자 중 절반은 GLP-1 계열의 약물을 맞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똑같은 도수의 칵테일을 주고 10분 안에 모두 마시게 한 뒤, 60분 동안 혈압과 맥박, 혈당, 호흡, 알코올 농도를 계속 측정하고 “지금 얼마나 취한 것 같으냐”고 반복해 물었다. 그 결과, 비만 치료제를 맞는 이들은 호흡 내 알코올 농도가 반대 그룹보다 더 천천히 증가했고, 질문에도 한결같이 “덜 취한 것 같다”고 대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GLP-1 약물이 음식물이 위에서 나가는 속도를 늦추다 보니 알코올도 그만큼 혈류로 천천히 흡수돼 뇌에 도달하는 속도도 느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코올이 뇌에 도달하는 속도가 느려지면 술을 마시면서 ‘좋다’고 느끼는 소위 ‘보상 회로’ 자극도 줄어든다. 같은 양을 마셔도 ‘그만 마셔도 되겠다’고 예전보다 빨리 느낀다는 것이다. 음주량이 줄고 술을 찾는 빈도 자체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연구팀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과 위스키 한 잔을 단숨에 마시는 것의 차이를 안다”면서 “흡수된 알코올은 체내에서 빠르게 작용할수록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데, GLP-1 계열 약물이 알코올의 혈류 유입을 늦추고 그 효과를 줄여 사람들이 덜 마시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공중보건국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은 술을 마시고, 10명 중 1명은 알코올 사용 장애를 겪고 있다.
연구팀은 소셜미디어 ‘레딧’에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를 맞은 이후로 술이 덜 먹고 싶어졌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는 것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일부 기존 연구에서도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가 알코올과 관련된 뇌의 보상 회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는 사실도 참고했다.
연구팀은 다만 연구가 예비 단계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결과를 확증하기 위해 후속 임상 시험을 설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