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 치료의 길을 연 공로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사카구치 시몬 일본 오사카대 교수는 의사과학자다. 그가 세운 스타트업 레그셀은 내년 미국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시험에 들어간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수, 2018년 혼조 다스쿠 교수 역시 의대를 졸업한 뒤 연구의 길을 걸었고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일본 의학계의 잇따른 성과에 대해 일관된 의사과학자 양성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의사과학자는 2008년 도쿄대 의대가 양성 과정을 본격 도입하면서 활성화됐다. 이후 의대 졸업생들이 기초 연구와 임상을 하며 의사과학자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지역 센터들이 확대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초 의학 연구를 하는 의사과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년 의대 졸업생 3000여 명 중 의사과학자로 진로를 선택하는 인원은 1%에 불과하다. 미국은 매년 1000명 안팎 의사과학자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최고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지만 피부과·안과·성형외과 같은 인기 진료과로 쏠리는 현상만 심해지고, 신약 개발 토대가 되는 기초 의학은 외면받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수시로 제도가 바뀌어 교수들조차 일일이 챙기기 버거울 정도라고 한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생겼다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잘되는 제도도 수시로 이름을 바꿔 혼란스럽다”며 “의대생들은 ‘정부 지원 제도를 어떻게 믿고 평생 진로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한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병역 행정도 의사과학자 양성의 걸림돌로 꼽힌다. 의사과학자들이 병역 의무를 하면서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군의관이 부족하다며 병무청이 의사과학자를 데려가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다. 의사과학자들은 “정부가 말로는 의사과학자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보건복지부와 국방부 조율조차 제대로 못 하는 엉터리 행정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발한다.

이처럼 한국 의사과학자 생태계는 연구 인프라 부족, 병원 진료 의사와 연봉 격차, 병역 문제 등 구조적 한계를 풀지 못하고 있다. KAIST·포스텍 등이 의사과학자를 본격 양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 의사과학자인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재는 의사과학자 개인의 사명감이나 희생에 의존하는 형편”이라며 “정부가 의사과학자를 국가 연구 인프라의 핵심 자산으로 여기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