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대 제약사 중 한 곳인 화이자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약값을 내리고 700억달러(약 98조원)를 미국에 투자하는 대신, 의약품 관세 적용은 3년간 면제 받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처럼 대형 제약사들에게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가격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도록 압박하면서 이들 제약사들이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선 가격을 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압박에 손 든 화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브리핑을 열고 “화이자가 자사 제품을 미국에 ‘최혜국 대우’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최혜국 대우(MFN) 가격이란 제약사가 미국 외의 선진국에 적용하는 가격 중 최저 가격이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미국 환자들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약 3배 높은 가격을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화이자가 현재 통용되는 가장 인기 있는 약을 모든 소비자에 50% 이상 크게 인하한 가격에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만 판매하는 약값을 50% 내리기로 합의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Rx(TrumpRx)’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화이자도 향후 이 플랫폼을 통해 혈액 응고방지제·페렴 백신·코로나 치료제 등을 평균 50%, 최대 85% 할인된 가격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쓰면서 약을 미국에서만 비싸게 팔고 외국에선 싸게 팔다 보니, 미국이 연구개발비를 전적으로 부담함으로써 사실상 다른 나라 약값을 보조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지난 7월 31일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서한을 보내 60일 내로 미국 내 약값을 인하라고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해왔다.
◇관세 때문에 미국에 98조원 투자도
화이자는 약가 인하와 별개로 미국 내 의약품 제조 시설에 7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대한 대가로 화이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의약품 관세에 대해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불라 CEO를 향해 “그가 여기(미국)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면 관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면서 “여기로 이전하면 관세가 없다”고 했다. 다른 제약사와도 유사한 합의를 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약값은 오르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또한 “앞으로 더 많은 제약사가 화이자처럼 미국 내 가격을 낮출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들은 (약값이) 약간 오르겠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내려갈 것이다. 이제 공정하다”고 했다. 제약업체들이 미국에서 약품 판매 가격을 내림으로써 입게 될 손해는 다른 나라에서 가격을 올려 메우도록 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월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통해 제약기업들이 외국 받는 약값을 인위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제약사의 연구개발 비용이 사실상 미국에 전가한 경우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선임 고문이자 이번 합의 실무를 맡은 크리스 클롬프도 이날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에서의 약품 가격은 더 많이 받도록 장려했다”면서 “그 돈(올려받은 약값의)의 일부는 추가 연구 개발 자금에 쓰이고, 미국인들의 약품 가격을 더 내려가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향후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약값을 내리는 만큼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선 약가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