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임산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자폐아가 생길 수 있다며 복용하지 말라고 했다. 뒤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로이터 연합뉴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아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국(FDA)을 통해 의사들에게 통보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타이레놀은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에서 분사한 켄뷰가 만드는 일반의약품이다. 임신부는 물론이고 남녀노소 누구나 쓰는 가장 흔한 진통제 중 하나다. 근데 임신한 여성이 이 약을 먹으면 자폐아 위험이 커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의학계에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 “불안감만 커질까 걱정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진통제 타이레놀 캡슐./AFP 연합뉴스

◇때아닌 타이레놀 논란

트럼프 대통령이 타이레놀을 자폐 원인으로 지목한 건 최근 발표된 한 논문에 근거했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마운트시나이 의대팀은 임신한 여성이 타이레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할 때 태아가 받는 영향을 분석한 전 세계 46개 연구를 재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국제 학술지 ‘환경건강’에 공개했다. 27개 연구가 ‘태아 자폐·ADHD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했고, 9개 연구는 ‘관련 없다’, 4개 연구는 ‘열을 낮춰 태아에 악영향을 줄인다’고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나머지 6개는 불분명했다. 연구팀은 “최소한 용량은 적게 복용기간은 짧게 하고, 의사와 상의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 원인이 된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아닌 이전 연구를 재분류한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00년에는 150명 중 1명이었던 8세 아동의 자폐 진단율이 2023년엔 31명 중 1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자 백신 회의론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HHS) 장관은 “자폐율 증가 원인을 알아내겠다”고 공언해왔다.

◇제조사 “정부가 사실 왜곡”

제조사 켄뷰 측은 성명을 내고 “지난 10여 년간 나온 엄격한 연구들은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 간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학계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고열이나 통증 자체가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으며, 이를 내버려두는 것이 더 큰 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대 의료윤리학 책임자인 아서 캐플런 교수는 “위험하고, 비과학적이며, 잘못된 정보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도 이날 트럼프 주장에 반대되는 연구를 모아 소개했다. 스웨덴 연구팀은 1995~2019년 사이 태어난 250만명 아동을 대상으로 임신 중 타이레놀 성분 처방 영향을 분석했다. 약에 노출된 어린이 1.42%가 자폐 진단을 받았고, 노출되지 않은 경우엔 1.33%가 자폐를 앓았다.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형제끼리 비교했을 땐 약 복용이 자폐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전적 요인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일본 국립 아동건강 발달센터가 20만명 어린이를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도 같은 결과였다.

FDA는 “최근 몇 년간 임신부의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녀 자폐 발병률 증가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증거가 보고됐다”면서도 “아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과학적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국내 의료계 “임신부 불안감 커질까 걱정”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전체 연구를 해온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트럼프 정부의 일부 인사가 타이레놀과 자폐를 연결하는 건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하고 대중 불안감을 선동하는 행위”라고 썼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 초기 고열은 기형을 유발하는 데 열을 떨어트리려면 타이레놀 외에는 대체재가 없다”며 “다른 계열 진통제는 태아 신장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고 했다. 소아 자폐 환자를 주로 보는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소아 자폐를 앓는 부모들의 불필요한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3일 “앞으로 해당 업체에 이에 대한 의견 및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관련 자료 및 근거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