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바이러스까지 만들어낸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들이 인공지능(AI)으로 설계한 최초의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20일(현지 시각) 네이처지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AI로 DNA 조각이나 단백질을 설계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AI가 하나의 완전한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 설계도를 짜고 이를 통해 실제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AI 설계로 만든 바이러스는 항생제에 듣지 않는 대장균을 공격하고 제거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AI가 내성이 강해 약이 쉽게 듣지 않는 세균을 겨냥하는 맞춤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향후 이를 통해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AI로 바이러스도 만든다
네이처지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계산생물학자 브라이언 히에(Hie) 등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지난 12일 바이오아카이브의 사전 출판(preprint) 서버에 게시했다. 이 논문은 아직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은 상태다.
AI로 DNA나 단백질 조각을 설계해서 만드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바이러스 유전체 전체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구팀은 ‘이보(Evo)’라는 이름의 AI 모델을 자체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단순한 바이러스(ΦX174)를 본떠 새 바이러스를 설계했다. 이후에 AI가 설계한 바이러스 일부를 실제로 합성시켰고, 다수의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중 16개는 우리 몸속 대장균을 공격하고 제거할 수 있는 바이러스였다.
연구팀은 해당 바이러스를 3종의 대장균주에도 시험했더니 균주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돼 사라졌다고 한다.
◇안전성·윤리 논란도
해당 연구를 살펴본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피터 쿠(Koo)는 “이번 연구는 오늘날 가능한 기술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면서 “다만 이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여전히 인간 연구자의 개입과 필터링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AI로 바이러스를 설계하는 것이 윤리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합성생물학자 케르스틴 괴프리히(Göpfrich)는 “이른바 ‘이중용도 딜레마’는 생명과학 연구 전반에 늘 존재하는 문제이고, 자칫하면 악용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고 했다. 이중용도 딜레마(dual-use dilemma)는 하나의 기술, 상품, 소프트웨어 또는 지식이 민간(평화적) 목적과 군사(잠재적으로 위험한) 목적 모두에 동시에 활용될 수 있다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윤리적·정책적 긴장을 뜻한다.
연구팀은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더욱 다양한 맞춤 항생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진은 “AI로 각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를 통해 더욱 다양한 항생제를 만들어 여러 질환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분야는 분명 성장할 것이고, 덕분에 흥미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