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AI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올터에고'. /AlterEgo

골전도 이어폰형 장치를 착용한 남성이 그림엽서 속 인물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입 모양만으로 ‘누구?’라고 속으로 말했지만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잠시 뒤 남성이 착용한 이어폰에서 “유럽을 상징하는 인물 유로파입니다”라는 답이 들려왔다. 옆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이 남성과 AI(인공지능)가 ‘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장면이다.

이 시연은 MIT(미 매사추세츠공대) 연구팀이 창업한 스타트업 ‘올터에고(AlterEgo)’가 최근 공개한 웨어러블 기기 영상의 한 장면이다.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이 같은 올터에고는 ‘또 다른 자아’라는 뜻으로, 인간과 AI의 텔레파시 소통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터에고 기기는 보청기처럼 귀에 착용하는 골전도 이어폰과 얼굴·턱 주변에 부착하는 센서로 구성된다. 이 센서들은 말을 할 때 미세하게 움직이는 얼굴·턱·성대 근육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감지한다. 사용자가 소리를 내지 않고 ‘하나, 둘, 셋’이라고 속으로 발음하면 이 신호가 포착돼 AI가 단어를 인식하는 식이다. 회사는 이번 제품에서 독자 기술인 ‘사일런트 센스(Silent Sense)’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소리를 내거나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말하려는 의도’만으로 신호를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인터넷 검색을 하고, 앱을 실행하거나 외부 전자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AI가 기기 내 카메라로 주변 사물을 인식해 질문에 답해 주기도 하고, 같은 기기를 착용한 사람끼리는 소리 없이 대화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올터에고는 시연 영상에서 기기를 착용한 두 사람이 무음으로 대화하고, 영어와 중국어가 실시간 통역되는 장면도 공개했다

올터에고는 “이 기기는 생각을 읽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말하려고 할 때만 신호를 감지한다”고 강조했다. 뇌에 전극을 심어 뇌 신호를 포착하는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2018년 MIT 미디어랩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한 올터에고는 초기에는 숫자와 간단한 단어 수준만 인식할 수 있었지만, 최근 AI의 비약적 발전 덕에 인식 정확도와 기능이 대폭 개선됐다.

회사 측은 이 기기를 통해 인터넷 검색은 물론 외부 전자기기 제어, 주변 사물에 대한 질문 응답, 무음 대화, 심지어 청각·발성 장애인의 의사소통 복원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제품이 일반에 공개된 상태가 아니어서 시연 영상과 다를 수 있다”며 지나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시연 영상을 보면 텔레파시 시대가 금세 올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할지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