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시 RTP 산업단지의 캠브렉스(Cambrex) 공장. 원료 의약품(API) 생산과 의약품 보관 설비 등을 갖춘 이곳을 비롯해 캠브렉스 공장들은 글로벌 투자업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캠브렉스는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의약품 위탁 개발 생산(CDMO) 기업이다. 미국이 수입 의약품에 고율 관세를 적용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 내 의약품 생산 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캠브렉스가 매물로 나왔다. 목표 매각 가격은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다. 앞서 6년 전에 캠브렉스를 24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사들인 사모펀드 퍼미라(Permira)가 거의 2배 값으로 이번에 내놓았다.
◇관세가 끌어올린 美 제약 공장 몸값
캠브렉스의 기업 가치 급등은 의약품 생산 시상의 호황 때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18개월 안에 150%, 최종적으로 25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미국 내 의약품 생산 시설의 몸값이 치솟은 것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을 놓칠 수 없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앞다퉈 미국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미국 CDMO들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받아 생산하고 개발하는 미국의 PCI 파마 서비스는 최근 베인캐피털이 다수 지분을 인수하며 기업 가치가 100억달러(13조 9000억원)로 뛰어올랐다
◇셀트리온도 美 공장 인수 나서
한국 셀트리온도 미국 의약품 생산 시설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셀트리온을 지난 7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미국의 공장은 원료 의약품,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해 온 곳이다. 셀트리온은 인수 비용으로 약 7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관세·무역 정책 변화에 따라 3000억~7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수도 있다. 이르면 다음 달 본계약을 체결해 인수가 확정될 경우, 셀트리온 제품의 미국 생산 거점이 될 전망이다. 셀트리온은 “미국 의약품 관세 부담을 덜려는 것”이라며 “원료 의약품은 물론이고 완제 의약품 생산·포장·물류까지 현지에서 해결해 ‘메이드 인 USA’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물 임차 등 부동산도 들썩
빅파마(big pharma·대형 글로벌 제약사)의 미국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2030년까지 미국 내 제조 및 연구·개발 인프라에 500억달러(약 69조 7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도 향후 5년간 미국의 제조 공장에 500억달러를 투자한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는 미국 뉴저지주의 무균 주사제 공장을 미국 CDMO 기업 서모피셔 사이언티픽에 매각했다. 서모피셔는 해당 공장에서 사노피 의약품 생산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사노피는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내 생산 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미국 생산 투자 확대에 따라 미국 내 바이오 제조 공간에 대한 부동산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관리 회사 JLL은 최근 6개월 동안 미국 바이오 제조 공간의 임차 수요가 185% 늘어났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미국의 의약품 생산 시설이 ‘핫딜(hot deal)’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특수(特需)가 미국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드영(EY) 분석에 따르면, 수입 약품에 25% 관세만 부과돼도 미국 내 약품 비용은 연간 510억달러(약 71조원) 불어나고, 소비자 가격은 최대 12.9% 오를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에서 생산·공급 체계를 강화하면서 늘어난 비용을 결국은 환자와 보험사에 전가할 가능성도 크다. 몸값이 치솟은 미국 의약품 생산 시설을 끌어안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용 부담을 결국 미국 소비자들에게 떠넘길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