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30년까지 AI(인공지능) 학습과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20만장을 확보하고, AI를 통해 잠재성장률 3% 회복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배 장관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취임 50일을 맞아 첫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30년까지 AI 3대 강국에 오르고, 과학기술 5대 강국을 달성하겠다. 국민 누구나 AI를 이용하는 AI 기본 사회도 이루겠다”고 했다.
◇“2030년까지 AI 3대 강국 이루겠다”
배경훈 장관은 이날 “2030년까지 AI 3대 강국에 들겠다”고 했다. 그는 “그저 3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중국과 미국이 AI 시장의 90~95%를 차지하고, 우리가 시장의 5~10%를 차지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미·중과 겨뤄도 동등한 수준의 AI 기술 역량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과기부는 과학기술 인공지능 장관 회의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배 장관은 “내년 AI 예산이 10조원을 넘는데 부처 간 중복된 예산을 없애고 효율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과학기술 인공지능 장관 회의는 범정부 차원에서 AI 정책을 총괄하는 회의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 AI 장관 회의는 부총리로 격상되는 과기정통부 장관이 주재하며, 국회 본회의 및 국무회의를 거쳐 다음 달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 장관은 또 “한국이 현재 챗GPT 이용률 1위라지만 언제나 대체재가 있어야 한다”며 “가장 우수한 대체재를 우리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소버린 AI)로 만들고 이를 전 세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K-AI’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그는 ‘K-AI’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포용적인 AI’라고 했다. 나이·성별이나 경제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오픈소스 AI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배 장관은 “정부가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나선 다섯 컨소시엄의 결과를 잘 활용하고 이를 AI 서비스로 만들어 국민이 쓰도록 하겠다”며 “AI 바우처를 만들어 학생·노년층에게 무료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2030년까지 성능은 높이고 전력은 아낄 수 있는 고성능 저전력 칩을 생산하는 이른바 ‘K엔비디아’ 육성 목표도 내놨다.
피지컬 AI를 발전시키겠다는 뜻도 밝혔다. 피지컬 AI는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처럼 일정한 형태를 가진 AI 기술이다. 배 장관은 “최고의 AI 모델을 계속 내놓는 빅테크를 여럿 보유한 미국이 여전히 중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제조 기반이 강한 중국이 피지컬 AI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피지컬 AI는 한국이 들어갈 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조 분야에 강점을 가졌고, 소프트웨어도 개발하는 한국이 앞으로 제조·의료·조선·방산·K콘텐츠까지 AI 전환을 이루고, 이를 통해 피지컬 AI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과학기술 5대 강국 되겠다”
배 장관은 2030년까지 과학기술 5대 강국 진입 목표도 밝혔다. 그는 “GPU 5만장 확보였던 기존 목표를 2030년까지 민관 협력을 통해 20만장으로 늘리기 위한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AI 대학원, AX(단순 자동화를 넘어 AI 기반으로 서비스를 재설계하는 것) 대학원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AX 대학원을 통해 경영 융합 인재를 키워 기업에 바로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한국이 노벨상급 성과를 낸다는 목표도 밝혔다. 배 장관은 “특히 바이오 쪽에서 AI로 큰 혁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알츠하이머를 정복하는 난제를 푸는 과정에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AI를 적용해 진전된 결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전력은 중요… SMR 개발로 에너지 믹스 추구”
배 장관은 AI 정책 구현을 뒷받침할 전력에 대해서는 “재생에너지로 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면서도 “태양광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차세대 원전인 SMR(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을 통해 에너지 믹스를 추구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에서 연구자들이 인건비와 운영비 상당 부분을 개별 연구 과제 수주를 통해 확보하도록 한 ‘연구 과제 중심 운영 제도(PBS·Project-Based System)’ 폐지 후 대책에 대해서는 “대형 임무 중심의 과제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1996년 도입된 PBS 제도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배 장관은 최근 잇따르는 통신사 해킹 문제와 관련해서는 근본 대책을 찾겠다고 했다. 그는 “해킹은 대형 통신사만의 문제가 아니고, 중소기업일수록 투자를 하기 어렵다 보니 해킹에 취약하고 자칫하면 제조 현장이 마비되는 일을 겪을 수도 있다”며 “정보 보호 대전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최대한의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를 악용한 해킹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매우 많다”고 했다. 또 사이버 침해를 당한 기업이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당국 개입이 어려운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도 언급했다.
<키워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개발자들이 이를 이용해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반면 오픈소스를 제공한 기업은 다른 개발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개별 국가 차원에서 개발하는 인공지능(AI)으로,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내놓는 AI 모델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 기업이 한국어로 된 데이터를 학습시켜 개발한다. 한국의 문화·사회·가치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보안이 중요한 국방·의료 등 공공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피지컬(Physical) AI
AI 로봇·자율주행차처럼 일정한 형태를 가진 AI 기술. AI가 스마트폰, PC에서 텍스트·이미지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처럼 물리적(physical) 실체를 갖추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된다.
☞소형모듈원자로(SMR)
대형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설비를 하나의 모듈에 담은 일체형·소형 원자력발전소. 출력을 낮춰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고,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 범위가 넓지 않게 했다. 건설 비용이 줄어들고 건설 기간도 짧아져 ‘차세대 원전’으로 꼽힌다.
☞PBS(연구 과제 중심 운영 제도)
정부 출연 연구 기관에서 연구자들의 인건비와 연구 운영비 상당 부분을 개별 연구 과제 수주를 통해 확보하도록 한 제도로, 1996년 도입됐다. 그동안 과학계는 PBS 폐지를 요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