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소외됐다.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룹 패닉의 이적은 1995년 발표한 ‘왼손잡이’에서 사회적 약자를 왼손잡이에 빗대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라고 불렀다.
인간의 왼손잡이 편견은 문어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문어는 다리가 8개나 되지만 어느 하나도 소외되지 않는다. 각각 쓰임새가 다르다. 앞다리는 주로 탐색을 맡고, 뒷다리는 이동에 쓴다. 어느 다리를 쓴다고 이상하게 볼 일이 없는 셈이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로저 한론(Roger Hanlon) 박사 연구진은 “야생 환경에서 문어의 다리 움직임을 관찰해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다리와 동작이 정해져 있음을 확인했다”고 1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논문에는 같은 연구소의 켄드라 부레슈(Kendra Buresch) 박사와 플로리다 애틀란틱대의 첼시 베니스(Chelsea Bennice) 박사도 공동 교신 저자로 등재됐다.
◇8년간 문어 25마리 생활 추적
문어는 여덟 개 다리를 이용해 물속을 헤엄치고 먹잇감을 낚아챈다. 수조의 잠금장치도 풀 정도로 다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우리는 문어 다리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팔처럼 쓰는 셈이다. 영어로도 팔(arm)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문어가 실제 환경에서 다리를 어떻게 쓰는지 종합적으로 연구된 사례는 없다. 대부분 실험실 수조에서 관찰했다. 핸론 박사는 “이번에 야생 문어의 동작 목록을 처음으로 완성했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2007~2015년 대서양과 카리브해에서 촬영한 야생 문어 3종 25마리를 관찰했다. 문어는 위장의 선수이다. 게다가 하루 80%를 은신처에 숨어 지낸다. 연구진은 문어의 서식지를 찾은 다음 며칠 동안 기다려 촬영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베니스 박사는 “문어는 다리로 이동하고 먹이를 잡을 뿐 아니라 바위나 해초를 끌어당겨 위장한다”며 “유연한 다리는 굴을 짓고 포식자나 짝짓기 경쟁자를 물리치는 데에도 필수”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8년간 찍은 1분짜리 영상 25개에서 다리 동작 3907건을 분석했다. 영상을 보면서 문어가 기어가거나 일어서고 돌이나 해초를 잡는 등 15가지 의도를 가진 행동을 할 때마다 어떤 다리를 사용했는지 기록했다. 또 특정 목적을 가진 행동에서 다리를 말거나 미는 등 12가지 동작과 각 다리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늘리거나 압축하고 휘거나 꼬는 식의 4가지 변형의 조합도 기록했다.
분석 결과, 모든 문어가 다리 여덟 개를 4가지 방식으로 모두 변형시킬 수 있으며, 각 다리로 모든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리의 밑부분은 늘리거나 압축하는 변형을 담당하고 끝부분은 주로 구부리는 데 썼다. 또 몸통 양쪽의 팔이 고루 사용되지만, 앞쪽 네 개를 쓰는 비율이 64%로 뒤쪽(36%)보다 높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앞다리는 주변 탐색에, 뒷다리는 이동에 주로 썼다. 쓰임새가 다르다 보니 동작도 달랐다. 예를 들어 뒷다리는 말거나(roll) 일어서는(stilt) 동작이 많았다. 다리를 말아 컨베이어 벨트처럼 해저를 따라 움직이고, 다리를 뻗어 마치 죽마(竹馬)를 탄 듯 일어섰다.
◇8개 모두 만능, 왼손잡이 문어는 없어
기존 연구에서는 문어가 오른쪽 또는 왼쪽 다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2022년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진은 문어가 여덟 개 다리 중 좌우로 두 번째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밝혔다. 관찰 결과, 문어는 사냥할 때 먹잇감이 보이는 쪽의 다리를 사용했다. 이때 먹잇감이 무엇이든 가운데에서 두 번째 다리를 가장 먼저 사용했다. 먹잇감에 따라 사냥법도 달랐지만, 이때도 두 번째 다리가 공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과학자들은 야생에서 문어가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로 행동하는 모습을 관찰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야생 문어가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로 행동하는 모습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야생 문어는 다리마다 모든 동작과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 과학자들은 앞서 연구가 실험실 수조에서 키운 문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핸론 박사는 “문어 시스템의 아름다움은 다리가 여덟 개이며, 그 여덟 개 모두 대부분의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유연성은 뱀장어 같은 포식자에게 한두 개의 팔을 잃었을 때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잃어버린 이를 대신할 잇몸이 많은 셈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문어가 특정 작업을 위해 특정 다리를 사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최초의 연구”라며 “문어 다리를 모방한 로봇 팔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사람들에게 의약품이나 휴대전화, 물을 전달할 때는 문어처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로봇 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5-10674-y
Current Biology(2022), DOI: https://doi.org/10.1016/j.cub.2022.08.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