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외부 자기장이나 극저온 장치 없이도 전자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 구조를 개발했다./istock

국내 연구진이 외부 자기장이나 극저온 장치 없이도 전자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 구조를 개발했다. 기존 전자기기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속도가 빠르며, 스마트폰이나 대규모 데이터센터 발열을 줄이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고려대·서울대 공동 연구진은 “스프링처럼 스스로 꼬여 있는 3차원 구조의 나선을 만들어, 나선 방향에 따라 전류와 전압 신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5일 발표했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하 입자다. 전기를 띠면서 스핀(spin)이라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미시세계의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에서 입자가 가진 고유한 각운동량을 의미하는데, 용어와 달리 입자의 회전과는 무관하다. 스핀 때문에 자성과 같은 물리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원자 단위의 작은 자석으로 보면 된다.

전자의 전기는 양(+)·음(-)의 전하로 나타내고 스핀은 나침반 바늘처럼 위쪽(↑)이나 아래쪽(↓)으로 표시한다. 전자기기는 전자가 있고 없음을 1 또는 0으로 표현하는데, 지금까지 전하만 활용해 정보를 저장·처리했다. 여기에 스핀(↑, ↓)까지 이용하면 정전돼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고, 훨씬 적은 전력으로 더 빠르게 동작하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더 똑똑하고, 빠르며, 전기 소모도 적게 만드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인 셈이다.

연구진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나노 크기 나선을 만들면서 오른쪽·왼쪽 꼬임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사이언스지

그동안 전자의 스핀 방향을 원하는 대로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아주 강한 자기장을 걸거나 섭씨 영하 수백 도의 극저온 상태에서만 스핀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 실제 기기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연구진은 나노 크기의 나선이 꼬인 방향에 따라 전자 스핀이 바뀌는 현상을 발견했다. 전자의 스핀을 더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김영근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자성체는 전자의 스핀을 스스로 정렬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나선 구조를 이용하면 전자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유기물과 달리 금속에서는 나노 크기 수준에서 나선 구조의 꼬임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며 “이번 연구는 분자를 이용해 나선이 오른쪽으로 꼬일지 왼쪽으로 꼬일지를 처음으로 정확히 제어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김영근 교수, 정은진 연구원, 전유상 박사, 남기태 교수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www.doi.org/10.1126/science.adx5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