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행복도가 20대 초반 무척 높다가 중년에 가장 낮아지고, 이후 차츰 상승하면서 ‘U자형’ 곡선을 그린다고 믿어왔다. 이를 ‘행복 곡선(Happiness Curve)’이라고 부른다. 갤럽 월드 폴과 브루킹스 연구소가 2010~2012년 조사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행복의 U자형 곡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가 나왔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는 20대가 가장 불행하고, 40대 이후부터 차츰 불행을 느끼는 정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경제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7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그동안 흔히 ‘중년의 위기’라고 표현했든 중년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했지만, 이젠 ‘청년의 불행’이 더 심각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깨진 행복 곡선…“청년 시절에 가장 불행”
연구진은 인류의 행복도를 새롭게 조사하기 위해 세 가지 대규모 설문조사를 합산, 분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93~2024년 성인 1000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영국에서 4만 가구를 대상으로 2009~2023년 진행했던 가구종단연구(UKHLS), 2020~2025년 44국 190만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한 ‘전 세계 심리 분석 프로젝트(Global Mind Project)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행복 곡선은 더 이상 U자 형태를 그리지 않았다. 2019년 이후 불행 곡선은 20대 때 가장 높았고, 갈수록 내려가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영국의 4만 가구 설문 분석 결과, 2009년엔 45~70세 여성이 가장 불행(불행 가능성 10%)했지만, 2020년엔 18~24세 여성이 가장 불행(20.2%)했다. 그다음으로 불행한 계층은 24~44세 여성(17.3%)이었다.
미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를 분석했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2009~2018년 18세 남녀의 불행도는 4% 정도였다면, 2019~2024년엔 18세 남녀 불행도는 8.4%까지 올라갔다. 반면 53세 남녀의 경우엔 2009~2018년엔 7.7% 정도였으나, 2019~2024년엔 6.7% 정도로 내려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층은 더 불행해졌고, 중장년층의 불행도는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2020~2025년 전 세계 44국 190만명을 심리 분석했을 때도 역시 젊은 층 불행도는 중장년층보다 높았다. 44국 모두 예외 없이 18~24세의 불행도가 45~74세보다 높았다. 가령 미국 거주자의 경우엔 18~24세 불행도가 0.104(1점 만점)였고, 45~54세의 불행도는 0.053, 55~64세는 0.027이었다. 프랑스의 경우엔 18~24세 불행도가 0.168이었고, 45~54세는 0.037, 55~64세는 0.020이었다.
◇스마트폰과 SNS, 경제 불안이 사회 바꿨다
연구팀은 이 같은 현상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9년 코로나 확산으로 더욱 가속화됐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후부터 청년층의 고용 불안, 임금 불안이 심화됐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젊은 층의 정신 건강이 또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확산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유행하면서 젊은 층에선 또래끼리의 비교가 심해졌고 이 결과 불만족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청년층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 세계 청년층의 자살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선 12~17세 자살률이 2008~2020년 사이 70% 급등했다. 학업 부진을 겪고 학교를 결석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미국 고교생의 만성 결석률은 2017년 17.6%에서 2021년 29.6%로 증가했다.
일을 하지 않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에선 2019~2022년 사이 청년층 경제 비활동 인구가 29% 늘었다.
연구팀은 “중년의 위기가 아닌 ‘청년의 불행’이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청년층의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인적 자본과 경제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