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 높이 투명 파이프에 뚫은 지름 2㎝ 구멍으로 물줄기가 초속 5m(시속 18㎞)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구멍에 우표 2배 크기의 가로·세로 6㎝ 스티커를 붙이자 물이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스티커를 뗐다 붙여도 접착력에 차이가 없었다. 이 정도 유속의 물을 막으려면 접착력이 강해야 해 쉽게 떼기 어려운데, 포스트잇을 탈부착하듯 편리하게 붙였다 뗀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최근 발표한 초강력 수중 접착제의 동영상 시연 가운데 일부 장면이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개발한 수중 접착제로 고무 오리를 바닷가 바위에 부착한 모습. /홋카이도대

연구팀은 미 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NCBI)에서 홍합, 갯지렁이, 박테리아 등 3822종 생물의 접착 단백질 2만4707개의 아미노산 서열을 확보했다. 이를 AI가 학습해 새로운 하이드로겔(hydrogel) 접착제 180가지를 설계했고, 합성·성능 시험 데이터를 다시 AI에 학습시키며 최적화했다. AI가 배운 ‘자연의 접착 비법’을 적용한 결과물이 이번에 공개한 역대 최고 성능의 수중 접착제다.

이번 접착제는 파도가 끊임 없는 바닷가 바위에 고무 오리(러버 덕)를 붙인 실험에서 끄떡 없는 접착력을 뽐냈다. 물을 가득 채운 파이프 구멍을 접착 스티커로 막은 실험에서도 5개월 동안 물 한 방울 새지 않았다. 시판 중인 접착 테이프를 붙였을 땐 1시간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누수가 생긴 것에 비하면 놀라운 접착력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에 AI를 활용해 개발한 하이드로겔 접착제는 1MPa(메가파스칼) 이상의 접착력을 갖췄다. 이는 가로 세로 1㎝ 면적(1㎠)에서 10㎏ 하중을 견딜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2.5㎝의 우표 크기로 접착 스티커를 만들면 체중 63㎏ 성인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벽을 자유자재로 기어오르는 장면이 멀지 않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배경이다. 다만 접착 스티커를 장갑에 붙이는 방식으로 스파이더맨처럼 건물을 기어오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완전히 매끄러운 표면에서는 이론적으로 연구팀이 밝힌 체중을 버틸 수 있겠지만, 일반 건물의 고르지 않은 벽면과 반복 탈착 등 현실적인 각종 변수를 고려하면 스파이더맨 장갑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접착제를 의족, 인체 부착형 바이오센서, 내시경 수술 부위 봉합 등 의료 분야는 물론이고 심해 탐사, 해양 구조물 보수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학·해양·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