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공지능(AI) 에이전트(비서)들이 실제 과학자들처럼 협업·소통하며 연구하는 ‘가상 연구실(Virtual Lab)’이 등장했다. AI 과학자들은 인간의 도움 없이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종을 예방하는 백신 물질을 수일 만에 설계해 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 연구팀은 다양한 과학적 전문 지식을 갖춘 다수의 AI 에이전트가 복잡한 연구 전략을 수행해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상 연구실’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9일 게재됐다. 연구팀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서는 다양한 학제의 연구자와 협업해야 하지만, 연구 자원이나 인맥 부족으로 팀을 꾸리기 어려운 연구자가 많다”며 “가상 연구실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우선 연구를 총괄하고 다른 AI들을 지휘하는 ‘책임 연구자’ AI를 만들었다. 인간 연구자가 과제를 제시하면, 책임 연구자 AI는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 AI 에이전트들을 만든다. 분야별 에이전트들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가상 회의를 진행한다. 가상 연구실에는 비판 에이전트가 하나씩 배치돼, 다른 에이전트들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 환각(AI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조 스탠퍼드대 교수는 “AI의 연구 방법에 개입하면 창의성이 제한되기 때문에 인간 개입은 1%로 제한했다”며 “대신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AI 대화와 회의 내용 등은 모두 기록된다”고 했다.
연구팀은 실제로 ‘새로운 코로나19 변이에 대한 백신 개발’을 AI에 과제로 줬다. 연구 책임자 AI는 각각 면역학, 계산 생물학, 머신러닝(AI가 스스로 학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전문성을 갖춘 AI 에이전트 3개를 만들었다. AI가 설계한 백신을 인간 연구원이 만들어 효과와 안정성 등을 실험한 결과, 2개는 기존 항체보다 바이러스에 강하게 부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최근의 변종 바이러스뿐 아니라, 5년 전 우한에서 나타난 원종 코로나에도 잘 결합한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자율 AI 에이전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까다로운 연구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최초의 사례”라며 “AI 에이전트가 인간 연구자들이 발표한 내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