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특허 심사관으로 일하던 나는 25세 때 캐나다로 이민했어요. 기계공학을 전공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년 후 미국으로 이사해 제너럴일렉트릭(GE) 연구·개발센터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이때가 1956년인데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나는 대학 때 수학과 물리학 성적이 엉망이어서 연구소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걱정했는데요, 뜻밖에도 면접관이 성적이 우수하다면서 칭찬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미국과 노르웨이 대학의 학점 체계가 달라 벌어진 오해였는데 내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노르웨이 대학에서 받은 수학과 물리학 학점은 4.0이었습니다. 이 점수는 노르웨이에선 거의 낙제 수준이죠. 최고 점수가 1.0이고 숫자가 커질수록 성적이 낮다는 의미거든요. A~F학점으로 치면 D학점 정도 성적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노르웨이와 정반대여서 4.0이면 우수한 성적이더군요. 덕분에 나는 무난히 GE 연구·개발센터에 입사해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내 이름에 ‘노벨상 수상자’라는 말이 가장 먼저 따라붙지만, 사실 나는 젊은 시절 내내 ‘낙제생’에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양자역학 같은 어려운 이론에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초전도(超傳導) 이론의 양자역학적 예측을 실험으로 입증해 197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답니다. 이후에는 동물세포의 생리 활동을 전기 신호로 감지하는 장치를 만들기도 했고, 바이오센서 기업도 공동 창업했죠.

노년기에 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라는 비판을 받았어요. 내가 “기후변화는 과학이 아니라 종교가 됐다”고 비판하자, 미국물리학회는 ‘기후변화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선언했어요. 이에 반발한 나는 “과학에서 반박 불가능한 건 없다”며 학회를 탈퇴했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 정답은 ‘이바르 예베르’(1929~2025)

이바르 예베르 박사가 제네럴일렉트릭 연구·개발센터에서 연구하는 장면. 그는 대학 학점이 좋지 않았지만 면접관이 우수 성적으로 오인해 입사에 성공했고, 17년 후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게티이미지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지고 자기장을 밀어내는 초전도 현상에 관한 이론을 실험으로 뒷받침한 ‘이바르 예베르’가 만 96세로 별세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두 초전도체 사이에 매우 얇은 절연층을 삽입한 구조를 만든 예베르는 전자가 마치 벽을 통과하듯 이동하는 ‘양자 터널링 현상’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는 기존의 초전도 이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됐고, 이 공로로 예베르는 브라이언 조지프슨, 레오 에사키와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한국도 여러 번 방문했던 예베르 박사는 “과학자라면 늘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