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물질이 고립된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떨까. 물리학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으로 꼽히는 초끈이론은 그렇게 말한다. 원자, 전자, 중력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힘과 입자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다른 진동 패턴에 따라 물질이 구분되는 것이라고. 이 이론이 정말 맞는지 아직 증명되진 않았다. 앞으로 증명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증명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초끈이론 연구자들도 있다.
초끈이론은 단절의 시대,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한다는 점에서도 아름답다. 머리 아프게만 느껴졌던 물리학이 조금은 쉽고,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과학이 우리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콘텐츠가 최근 SNS에서 폭팔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42)가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어려운 과학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주는 직업이다. 궤도는 현시점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DM(인스타그램 메시지)으로 하루 300개가 넘는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 과학 질문이다. “귀신은 있나요.” “지구 자전 방향을 바꾸면 제 주말도 바뀌나요.” 같은 귀엽고 엉뚱하고 가끔은 진지한 질문들. 궤도는 이 대화를 ‘탐구의 시작’이라 불렀다. 이미 자신이 수백 번 받은 질문이더라도, 누군가의 인생 첫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의 모든 DM에 답한다.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다. 오직 불친절한 답변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이런 질문 하면 안 돼요”라는 그의 유쾌한 어록도 그런 철학에서 비롯됐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도 DM으로 시작됐다. “양극단의 시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 대화가 왜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알려달라”는 막무가내 인문계 졸업자의 질문에도 그는 “좋은 질문”이라며 흔쾌히 답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메시지를 주고받은 끝에, 지난 6월 29일 일요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대우재단빌딩에서 궤도를 만났다. 바쁜 스케줄을 쪼개 이뤄진 인터뷰였음에도, 과학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은 안광을 뿜고 있었다. ‘진정한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다웠다. ‘대화의 과학’을 주제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는 초끈이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도, 말은 여전히 서로를 진동시키는 하나의 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 ‘대화’도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나. “대화를 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하면 그 소리가 매질을 때려서 귀로 에너지가 들어오고, 그게 귀에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서 뇌로 전달되는 게 소통이다. 그래서 보통 대화를 소리로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비언어적 소통이 되게 많다. 눈빛, 표정, 미세한 움직임, 제스처… 이런 것들이 전부 대화에 포함된다. 그래서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일종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정보를 넘어 서로의 여러 가지 감정을 교환하기도 하고…. 매질과 소리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까지가 대화다.”
- 대화하는 행위가 과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대화는 생명체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생명체의 본질은 결국 생존인데, 대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생존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식물들도 화학적으로 대화를 한다. 한 식물이 잎사귀가 잘렸다고 치면, ‘내가 지금 공격을 당했다’ 하고 주변의 모든 식물에게 화학적으로 알려준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위기일 때 주변 매개체에 알린다. 그런데 사람은 심지어 사회적 동물이다. 훨씬 복잡한 대화를 한다. 사회적 동물에게는 의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도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하라리는 책에서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 이후 약 7만년 전부터 호모사피엔스가 언어와 상징 능력을 급격히 발전시키면서 집단 내 협력이 강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때 인간 언어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뒷담화(gossip)’, 즉 타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다.
하라리는 “다른 인간 종들은 이런 추상적 언어나 사회적 정보 공유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유연한 협력을 조직하지 못하면서 사피엔스에 밀렸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대화가 지금의 종(種)을 있게 한 이유다. 궤도는 하라리의 인문학적 가설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셈이다. 과학과 인문은 같은 얘기를 한다.
- 서로 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생각이 다르면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이 같은 ‘선택적 공감 현상’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 “축구를 본다고 상상해 보자. 똑같은 경기인데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낀다. 우리나라 선수가 태클을 당하면 ‘반칙’이라며 정말 열받는다. 그런데 상대 선수가 태클을 당하면 ‘야 쟤는 아프지도 않은데 왜 저렇게 엄살을 부려.’ 이렇게 반응한다. 누가 우리 편이냐에 따라 감정 반응이 달라지는 게 선택적 공감 현상이다.”
-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느껴진다. “맞다. 선택적 공감은 생존을 위해 세팅된 뇌의 기본값이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다. 일종의 위험 감지 센서 같은 건데, 일반적으로 낯설고 어색한 것을 보면 경보를 울린다. 진화 과정에서 나와 다른 무리는 곧 잠재적 위험이 됐다. 반대로 나와 생각이, 외모가, 신념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보통 사랑할 때 주로 나오지만, 유대감이나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신뢰 호르몬’이라고도 부른다. 이게 우리 편한테는 굉장히 강하게 작용을 하고 상대편한테는 경계심이나 적대감을 일으키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 뇌가 왜 그렇게 반응하나.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에너지를 활용해서 사고하는 정신 활동을 한다. 에너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모든 활동에 이 에너지를 다 쓰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면 우리와 그들, 타인, 남을 일단 구분을 하고, 우리 편에서는 공감 스위치를 딱 켜고, 상대편한테는 꺼버린다. 뇌 입장에서 이게 가장 효율적인 거다.”
기술은 모두를 연결시켰지만, 또한 모두를 분리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과도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됐지만, 역설적으로 이게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둬서, 선택적 공감을 강화시키는 원인이 됐고 소통을 방해하는 측면도 생겼다. 궤도는 이것을 기술의 발전에 따른 ‘현대판’ 부족(附族)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핵심에 알고리즘이 있다. 알고리즘은 나를 무오류의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와 주변이 온통 같은 생각을 하는데,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른 의견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선택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 비대면 대화가 많아진 시대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다양한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해 대화를 한다. 여기에서 알고리즘이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긍정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냥 하나 봤을 뿐인데, 그걸 기반으로 비슷한 글이나 영상만 계속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내 타임라인이나 SNS,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까지 전부 나랑 비슷한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걸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 뇌가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하는구나’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거다. 그러면 내 의견이 점점 진리처럼 느껴지고, 반대되는 생각은 불편하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수동적으로 편한 정보만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 알고리즘 문제는 계속 대두되고 있다. 해결방법이 있나. “결국에는 이 알고리즘이 이런 부분까지 학습하고, 해결할 거라고 본다. 너무 편향된다 싶으면 오히려 반대인 것도 추천하는 식으로. 지금은 과도기인 것 같다. 나중에는 알고리즘이 ‘너 이쪽으로 가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아예 반대되는 걸 한번 추천해 주겠다’ 하는 시대가 올거다. 약간 소프트한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역할도 알고리즘이 할 거라고 본다.”
-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왜 나를 계몽하려 드느냐’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보기 싫어서 자유의지로 안 보는 건데. 그런데 먼 미래에는 그런 것도 감안해서 좋은 작용을 하는, 장기적으로 사용자가 만족할 만한 기술도 나오지 않을까. 지금 사용자들도 피로도가 높다. 맨날 똑같은 것만 추천해 주니까 오히려 질리기 때문이다. 내 알고리즘을 벗어나, 편향된 정도에 따라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부터 추천하는. 이게 아마도 알고리즘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화로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과학에 ‘절대로’라는 건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의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 가치관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 뇌에는 가소성이 있다. 경험이나 학습, 환경 변화에 따라 구조나 기능을 끊임없이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만 사람이 변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라는 표현이다. 뇌는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정적으로 잡혀 있는 성격이나 가치관이 변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게 꾸준히 어떤 영향을 받으면 변한다고 생각한다. 의지가 있다면 변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대화로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변하게 하는 게 가능할까. “너무 재미있는 질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최대한 축소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변화의 주체는 오직 항상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굉장히 불합리하다. 상대방을 바꾸려 들면 변화는 커녕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 그러고 보니 애초에 타인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의 전제는 ‘내가 무조건 맞다’는 생각인가. “‘내가 정답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대화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이게 사실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진리에 무한히 가까워지려는 과정이다. 새로운 팩트, 증거가 나오면 기존 이론을 바꾸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반면 신념, 믿음에 기반한 대화는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변화가 어렵다.”
- 그렇다면 선택적 공감만 하려는 사람, 대화를 피하려는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신념이 강한 사람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직접 반박하면 오히려 방어심만 강화된다. 성벽에 돌 던지는 거랑 비슷하다. 돌이 몇 번 날아오면 점점 견고하게 다듬는다. 방어를 해야 하니까. 그래서 공격받고 있다라고 느끼는 순간 성문을 절대 열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역화효과(Backfire effect)’라고 부르는데, 반박하는 사실을 계속 들이댈수록 기존 믿음은 강화가 된다. 그래서 절대 성을, 믿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성 밖에서 공통의 영토를 찾아야 한다.”
- 공통의 영토라면. “예를 들어 자녀 교육 문제로 누군가와 의견이 갈린다면, ‘당신의 자녀 교육 방식은 틀렸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일순간은 충격을 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성벽을 강화시킨다. 시작을 이렇게 해보자. ‘저희 둘 다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대화의 주제는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어떻게 해결해 볼까요’가 된다. 이렇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공통의 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단 공통의 땅으로 상대방을 끌어오면 그때부터는 방어적인 태도가 사라지고, 적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가 된다.”
선택적 공감은 개인의 의식적 훈련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궤도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찾아보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열린 태도를 갖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을 접하며 자동 반응을 멈추는 연습을 통해 인지적 균형감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정말 많은 생각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내 입맛에 맞는 달콤한 정보만을 받으면서 사는 것은 정신적인 편식이다. 소위 말하는 확증편향이다. 반대로 내가 여러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한다면 결과적으로 건강한 몸이 되는 거다.”
-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학을 잘 모르는 대중을 상대로 대화해야 하는 직업이다. 본인만의 대화 꿀팁이 있다면.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메아리쳐서 돌려주는 거다. 상대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지 말고, 그대로 요약해서 다시 들려주는 거다. ‘지금 말씀하신 건 이런 의미인가요’ 하고 확인하는 식이다. 이 적극적 경청에도 과학적 원리가 있다. 상대의 뇌는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한다’고 인식하고, 더 개방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방어기제가 해제되고 대화의 문이 열린다. 또 요약하는 과정에서 나의 오해를 줄이고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게 돼서, 엉뚱한 논쟁을 피하게 해준다.”
- ‘좋은 방향으로 가자’는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비판이나 대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인기 있는 토론 영상들을 보면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해야 한다. 말문이 막혀야 한다. 과연 거기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걸까. 그냥 조롱 자체가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 토론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대화다. 똑똑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토론을 하는데, 힘을 합치면 얼마나 좋겠나. 저도 물론 영상에서 재미를 위해 대립하는 구도를 많이 만든다. 그런데 그건 예능이고, 어쨌든 상대의 의견을 잘 듣고, 그 안에서 좋은 부분을 발견해 내 의견과 합쳐보려는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 대화에서 설득을 위해 상대에게 어떤 올바른 논리를 제안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을 주는 것이다. 이런 존중하는 대화를 보고 대중들이 더 환호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그런 대화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토론에서 주로 통계적으로 공격하는 화법을 쓰는 사람도 있다. “물론 수치를 정말 잘 외운다는 것은 똑똑하고 훌륭한 재능이기는 하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상대와 좋은 대화를 하려면 통계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유리하다. 통계를 제시하기에 앞서 나의 문제를 얘기하는 거다.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우리 뇌에 공감 회로를 건드려서 같은 부분을 고민하게 되는 거다.”
- ‘음모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음모론처럼 믿음의 영역에 있는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아무리 반박해도 깨기가 어렵다. ‘아직 모르는 것 아니에요’ ‘아직 우리 과학기술이 못 밝혀낸 것 아닙니까’ 식의 반응은 어떤 주장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다. 예컨대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하면,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달에 갔다는 여러 가지 근거들을 보여드려 볼게요’라는 식으로 조금씩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검증해야 한다. 음모론이라고 규정을 지어버렸기 때문에 또 안 들을 필요는 없는 거다. 저도 사실 부족한 부분이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 수단으로 MBTI와 테토·에겐 등의 분류가 유행하고 있다. “이 같은 구분과 비유가 과학적이냐라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답변드리기 어렵다. 남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범주로 규정을 하는 건 과학적인 일이기도 하다. 과학이 만든 방정식, 여러 법칙들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서,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다. 예를 들어 MBTI 같은 성격 유형도 ‘아, 그래서 네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상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이런 틀에 나 자신을 고정시켜버리면 ‘나는 ‘I’니까 사람들 앞에 잘 못 나서’처럼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나를 규정 짓는 데는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결국 좋은 대화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과학적 정의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지점이 있을까.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사랑을 성욕, 끌림, 애착의 세 가지로 나눴다. 성욕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 때문에 생기는 원초적 욕구다. 끌림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로맨틱한 사랑이다.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페닐에틸아민 등이 나오는 상태다.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고, 안 먹어도 배부른 강렬한 흥분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끌림은 오래가지 않는다. 뇌가 계속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고, 익숙해지면 호르몬들도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애착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관여하는 안정감과 유대의 감정이다. 이 애착이야말로 오랜 관계를 지속시키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문제는 지금 사회와 미디어가 끌림에만 집중하면서 사랑을 자극적이고 짜릿한 감정으로만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건 서로를 믿고 기대는 애착, 즉 깊고 안정적인 유대다. 연인뿐 아니라 친구, 가족, 공동체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 ‘옥시토신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다.”
궤도는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출신으로 국책연구소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주 활동 무대는 석박사급 과학자들이 만든 과학 유튜브 ‘안될과학’. 학술 콘텐츠를 다루는 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131만명이고, 6년간의 누적 조회수는 3억7000만뷰를 넘는다. 궤도라는 활동명은 자신의 세부 전공인 인공위성 궤도(orbit)에서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2017년)을 받고 청와대 G20세대 자문단 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KBS 누리호 발사 생중계, 넷플릭스 ‘데블스플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MBC ‘라디오스타’ ‘전지적참견시점’, EBS 특강 등 방송에 출연하고 공공기관에서 강연하며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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