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가 해조류를 도구로 삼아 서로 몸단장을 해주는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해양 포유류의 도구 사용 사례는 극히 드물다.
미국 고래연구센터 마이클 와이스 박사 연구팀은 태평양 북서부의 ‘남방 상주 범고래(southern resident killer whale)’들이 다시마 줄기 끝을 부러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최근 게재됐다.
연구팀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미국 워싱턴주 사이 태평양 일부인 세일리시해에 사는 남방 상주 범고래 개체군을 드론으로 관측하던 중 다시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행동을 발견했다. 이 범고래들은 남은 개체가 80마리도 안 될 만큼 심각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연구팀은 이들의 먹이 활동과 사회적 행동 등을 2018년부터 모니터링해왔다.
2024년 4~7월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에는 범고래들이 다시마 줄기 끝부분을 부러뜨려 도구를 만들고, 이 다시마 줄기를 다른 개체의 몸에 밀착시켜 문지르는 모습이 담겼다. 일부 고래 종은 다시마(kelp) 등 해조류를 몸에 문지르는 ‘켈핑(kelping)’을 통해 피부를 관리하고 기생충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선 두 마리의 고래가 다시마를 도구로 사용해 상대를 문지르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연구팀은 “범고래가 다시마를 상대 몸에 문지르는 행동은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사회적 행동”이라며 이를 ‘알로켈핑(allokelping)’이라고 명명했다.
알로켈핑은 범고래 집단 내에서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관찰됐고, 가까운 친척이거나 비슷한 연령대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죽은 피부가 벗겨지는 탈피(molting)가 진행 중인 범고래도 자주 알로켈핑에 참여했다. 연구팀은 “알로켈핑이 범고래들의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며 “탈피 기간에 더 많이 알로켈핑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위생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와이스 박사는 “가장 놀라운 점은 범고래 관찰 연구가 50여 년간이나 진행됐음에도 이 행동이 이제야 발견됐다는 것”이라며 “이는 이 동물에 대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고래들의 사회와 문화가 얼마나 독특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멸종 위기에 놓인 개체 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