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각 사 제공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들이 올해 1분기 실적을 잇달아 발표했다. 빅파마들은 비만 치료제, 항암제 등 주요 의약품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산 시설 이전, 약가 인하 압박이 잇따르면서 증권 시장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실적 성장 폭 가장 큰 비만 치료제

글로벌 제약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 중 가장 부각된 게 비만 신약의 성장세다. 현재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양강 구도인데, 두 회사 모두 1분기 비만 신약 매출이 늘었다.

일라이 릴리의 1분기 매출액은 127억2850만달러(약 18조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5% 증가했다. 이 회사는 당뇨·비만 치료제가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당뇨약 ‘마운자로’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13% 늘어 약 5조원을, 비만약 ‘젭바운드’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56% 늘어 약 3조원 규모다. 현재 미국 증시에서 시가 총액 상위 20위권 내 기업 중 제약사는 일라이 릴리(15위)가 유일하다.

노보 노디스크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 늘어 780억8700만 크로네(약 10조7200억원)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당뇨 치료제 ‘오젬픽’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고, 비만약 ‘위고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늘어 당뇨·비만약 매출만 10조원 규모다.

젭바운드·위고비 모두 소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주사제로,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개발했다가 체중 감량 효과 부작용이 확인돼 비만 치료제로 발전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 희비

항암제는 전통적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특허기간 만료 여부가 실적 희비를 갈랐다.

항암제 시장 매출 1위인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올해 1분기 매출액이 72억500만달러(약 10조원)규모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성장세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4분기 매출(78억3600만달러)보다는 감소한 규모다.

키트루다는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PD-1를 표적으로 하는 면역항암제다. 이 단백질은 T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하는데, 암세포는 이를 악용해 면역계를 회피한다. 키트루다는 PD-1을 차단해 T세포의 면역 기능을 활성화해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돕는다. 키트루다는 2028년 한국과 미국에서, 2032년 유럽에서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

MSD는 특허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정맥주사(IV) 제형인 키트루다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개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키트루다 SC 제형 개발이 완료되면 신규 특허를 통해 2030년 중반까지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다. 머크는 올해 ‘키트루다SC’를 출시하는 한편 2028년까지 전체 키트루다 매출의 약 50%를 SC 제형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반면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는 1분기 매출액이 전년보다 6% 감소한 112억100만달러(약 15조원)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매출 감소 요인을 제네릭(복제약)과의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레블리미드·포말리스트·스프라이셀·아브락산' 등 오리지널 항암제들의 특허 만료가 이어졌고, 복제약들이 등장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뺏긴 것이다.

◇제약주 향방, 트럼프 입에 달렸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주가 변동성이다. 통상적으로 임상시험 결과 발표가 제약사 주가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변수였다면, 이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가를 흔드는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처방약 가격을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인하하겠다고 밝힌 후 전 세계 제약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게 단적인 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노보 노디스크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스위스 로슈 등 유럽 제약사 주가가 줄줄이 내렸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약가를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예고했다.

일라이 릴리와 화이자·BMS·MSD 등 미국 제약사 주가도 뉴욕증시 개장 전 거래에서 모두 하락했다.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미국 수출 규모가 큰 국내 회사들도 주가도 내렸다.

미 행정부는 약가 인하 대상 의약품을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안에 의약품 관세도 발표하겠다고 했다.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될 수 있는 정책인데,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보니 주가 변동 폭도 클 수밖에 없다.

위해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약가 인하와 의약품 관세 부과, 미국 내 생산 장려 등 정책 불확실성으로 헬스케어 부문 기업들의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와 후속 조치에 따라 주가 추이가 달라질 수 있어 당분간 변동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