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 /연합뉴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달부터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한 데 이어 오는 6월 말까지 모든 센터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본격 도입할 방침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화이자, 존슨앤드존슨(J&J)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도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의약품 시장 분석 등 다양한 업무 영역에 AI를 투입하고 있다.

마틴 마카리(Martin Makary) FDA 국장은 지난 9일(현지 시각) “과학적 검토에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시범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6월 30일까지 FDA 전 센터에 AI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대적인 연방 인력 축소 기조의 일환으로 FDA 직원 3500명의 감축을 진행했다. 구조조정 대상은 기술, 조달, 인사, 커뮤니케이션 등 지원 분야뿐 아니라 의약품, 의료기기, 식품, 담배 등을 감독하는 주요 부서 고위 과학자들도 포함됐다.

시장에선 FDA의 인력 감축 여파로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승인이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FDA는 AI로 그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FDA는 내부 데이터 플랫폼과 통합된 생성형 AI 시스템을 구축해 전면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FDA는 AI 도구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심사 작업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카리 FDA 국장은 “앞서 진행한 시범 사업의 성공에 놀랐다”며 “검토 절차상 많은 시간을 소모해 온 비효율적인 반복 업무를 줄여야 하는데, AI 기술 도입이 심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AI 도입의 가속화는 FDA만의 얘기가 아니다.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 부원장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평균 10~15년, 3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AI는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제약·바이오 기업의 필수 도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FDA는 동물실험을 세포로 키운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 시험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FDA는 AI를 이용하면 오가노이드 시험으로도 동물실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기업 입장에선 고도화된 AI를 활용해 신약을 평가, 검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해 2030년까지 약 1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같은 IT(정보기술) 기업이 AI 신약 개발 기술·플랫폼을 개발해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강재우 고려대 데이터과학과 교수는 “AI는 더 이상 단순한 분석 도구가 아니라 숙련된 인간 연구자의 전략을 복제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이언티스트(과학자)’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신약 후보 물질 발굴뿐 아니라 의약품 시장 분석 등 다양한 업무에 생성형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최대 방산기술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도 정밀 의료, 의료 자원 최적화, 신약 개발 가속화 등과 같은 헬스케어 분야를 새 시장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 회사는 미 보건복지부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같이 각종 분석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분야에 AI 도입이 가속화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생성형AI가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AI에서 데이터 편향이 발생할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규제나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일자리 문제도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분야인데 AI, 로봇 등 첨단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