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바이오 벤처 업계는 경기 불황과 투자 감소가 겹쳐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바이오 산업은 IT 스타트업과 달리 창업을 위해 상당한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약 등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주식 상장으로 자금을 마련한 이후에도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 국내 1호 상장 바이오 벤처인 마크로젠의 서정선(73) 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바이오 벤처들은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의존도가 너무 크다”며 “규모가 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국 바이오 벤처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서정선 회장

서울대 의대 교수로 유전공학을 연구하던 서정선 회장은 1997년 실험실 한편에서 마크로젠을 창업했다. 인간 유전체를 분석하면 미래에 어떤 질환이 생길 위험이 높은지 미리 알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당시 미국 등에서는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받아보는 데 7일 이상 걸렸는데, 마크로젠은 이 결과를 48시간 내에 온라인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시장이 작아 매출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2000년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마크로젠은 글로벌 시장으로 시야를 넓혔다. 서 회장은 “2002년 처음으로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5달러만 내면 유전체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전면 광고를 냈더니 호응이 대단해, 3000만원에 불과하던 월 매출이 10억원까지 빠르게 올라왔다”며 “외국의 경쟁 기업들이 20달러씩 받던 비용을 5달러까지 낮추며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마크로젠은 글로벌 유전체 분석 시장에 뛰어들어 연 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며 “바이오 벤처들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해야 하고, 정부는 벤처들이 힘든 구간을 건너갈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고 했다.

마크로젠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유전체 분석 사업을 2023년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은 헬스케어 앱 ‘젠톡’으로 최대 129항목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마크로젠은 이 서비스를 삼성전자 갤럭시의 건강 관리 설루션에 탑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서 회장은 “모두가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잘 안다면 의료비를 낮추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한국의 의료 기술 역량을 널리 알려 후발 주자들도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