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한국 여성의 평균 첫째 출산 연령은 32.96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5세 이상 여성의 출산을 노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변하면서 노산과 고령 임신은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고령 임신에서 발생하는 염색체 이상이나 유산, 합병증 같은 여러 문제는 아직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글로벌 생명공학 기업 암젠(Amgen)의 자회사인 아이슬란드 바이오 제약 회사 디코드 지네틱스(deCODE Genetics) 연구진이 부모의 DNA가 자녀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분석해 고령 임신의 위험 요인을 분자 수준에서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3일 실렸다.
부모의 DNA는 자녀에게 전달될 때 일부 섞이는데, 이를 재조합이라고 한다. 재조합은 부모의 유전 정보를 섞어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데 필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임신이 지속되지 않거나 유전적 결함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약 10쌍 중 1쌍이 겪는 불임 문제가 재조합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재조합 과정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과거 연구는 큰 DNA 조각이 교환되는 교차형 재조합(CO)에 주로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 연구는 비교차적 재조합(NCO)까지 포함해 재조합 지도를 완성했다. 비교차적 재조합은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작은 DNA 조각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유전자 배열에 미세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2132개 가족의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성과 여성의 재조합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여성은 남성보다 비교차적 재조합의 빈도가 낮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여성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난자에서 DNA 손상이 증가하고, 이를 복구하려는 비교차적 재조합이 더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은 나이에 따라 재조합 빈도나 과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여성의 난자는 태아 시기부터 만들어져 오랜 시간 동안 환경적 손상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여성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비교차적 재조합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거나 효율이 떨어져 돌연변이 발생 위험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재조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DNA 손상이 전체 유전자 돌연변이의 약 11.3%를 차지하며, 이 중 상당 부분이 비교차적 재조합 과정에서 발생했다. 특히 40대 여성은 20대보다 DNA 손상이 더 많고,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며 돌연변이가 더 많이 발생했다. 고령 산모일수록 염색체 이상과 유전적 결함이 왜 더 흔히 나타나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연구진은 “두 성별의 재조합 변화 양상이 다르긴 하지만, 재조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염색체 이상, 불임, 유산 같은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이번에 만든 재조합 지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유전 질환을 예방하거나 태아 건강을 관리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84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