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싱가포르 난양공대 공동 연구진이 이온의 움직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이석우 난양공대 교수, 이동훈 난양공대 박사후연구원, 서동화 KAIST 교수, 송유엽 KAIST 박사과정 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전력을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이 최근 주목 받고 있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재사용하는 에너지 하베스팅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에너지 하베스팅은 안정성 문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이온이 주목 받고 있다.

서동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이석우 싱가포르 난양공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이온의 움직임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웨어러블(wearable, 착용형)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싱가포르 난양공대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이온 기반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의 모식도(왼쪽)와 미세유체 칩(오른쪽). 섞이지 않는 전해질 경계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이용해 안정성을 높였다./한국과학기술원

에너지 하베스팅은 몸을 움직이거나 주변에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전자 장치를 충전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은 크지 않아 스마트폰, 컴퓨터 같은 일상적인 장치를 작동하기는 어렵지만, 전력을 적게 쓰는 웨어러블 장치나 사물인터넷(IoT) 장치의 전력 공급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에너지 하베스팅 시장은 2023년 6억1490만달러(약 8805억원)에서 2032년 12억1000만달러(1조7327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압력을 가하면 전류를 발생시키는 압전(壓電) 방식과 마찰 전기를 이용한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 저항이 커 전류가 흐르는 시간이 짧다. 일정한 전력을 공급하려면 커패시터(축전기) 소자를 사용해야 해 소형화가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에너지 하베스팅을 상용화하기 위해 전력 공급 안정성을 높일 방법을 찾고 있다.

KAIST와 난양공대 연구진은 물과 이온성 액체 전해질 사이에서 이온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전위차(전기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새로운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개발했다. 섞이지 않는 두 종류의 액체 전해질에 담긴 전극을 움직이며 전력을 만든다. 느리고 반복적인 움직임으로도 전력을 만들 수 있으며, 전류가 흐르는 시간을 최대 100초로 높일 수 있다. 이 장치를 사람 몸에 붙이면 걷는 것 같은 일상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시뮬레이션(가상실험)으로 물과 이온성 액체 전해질 사이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전해질 사이와 전해질·전극 사이의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 에너지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를 여러 개 직렬로 연결하면 출력 전압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최대 전압은 약 950㎷(밀리볼트, 1000분의 1볼트)로 일반적인 전자 계산기를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동화 교수는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일상적인 움직임에서도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함께 진행해 설계하고, 상용화 가능성도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미세 유체를 이용해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장치는 전압 20㎷, 전류 밀도는 ㎠당 15㎂(마이크로암페어, 100만분의 1 암페어)를 나타냈다. 액체를 이용하면 물리적인 마모 없이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저전력 장치나 소형 웨어러블 장치를 작동하는 데 충분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온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최근 활발히 연구 중이다. 고승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지난 5월 소금물 3방울 만으로 발광다이오드(LED)를 10분간 켤 수 있는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를 개발했다. 물의 증발과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이온의 농도 차이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전력을 만든다. 태양광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국과학원(CAS),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같은 주요 연구기관들이 이온을 이용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10월 19일 실렸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53235-z

ACS nano(2024), DOI: https://doi.org/10.1002/adfm.20240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