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진석 혈액내과 교수는 “가장 흔한 림프종인 DLBCL은 다른 고형암과 달리 치료제가 잘 들어, 완전관해(암세포가 모두 없어진 상태)가 5년간 유지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며 “환자에 맞는 적절한 치료제를 쓰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세브란스병원
암세포(가운데 파란색)를 둘러싸고 있는 T세포(녹색 및 빨간색). T세포는 암세포를 인식해 그 세포가 사멸하도록 유도한다. CAR-세포 치료제는 T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건강한 세포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표적으로 유도미사일처럼 공격하도록 만든 약물이다./NIH

인체 면역세포인 림프구는 혈액과 함께 온몸을 돌아다니며 병원체를 없앤다. B세포, T세포 같은 림프구는 림프액에 실려 몸 구석구석에 닿는다.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에 가장 많고, 위·장을 비롯한 장기에도 모인다. 이런 림프구가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생기는 암인 림프종은 백혈병과 함께 대표적인 혈액암으로 꼽힌다.

이중항체는 두 가지 표적을 동시에 노려 기존 단일항체 면역항암제보다 부작용은 적고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약물로 알려져 있다./삼성바이오로직스

림프종 환자 수는 고령화와 더불어 검사율이 늘면서 최근 5년간 약 36%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서 1만4000명이 넘는 환자가 림프종 투병 중이다. 10년 전인 2013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가수 윤도현, 작가 허지웅도 림프종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림프종은 다른 암종에 비해 혈액을 타고 빠르게 온몸으로 퍼질 수 있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진행 속도에 따라 지연성과 공격성으로 분류되는데, 대표적인 공격성 림프종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은 1기가 지나면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단 석 달 만에 마지막 4기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다행히 DLBCL은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만큼, 치료제를 잘 쓰면 예후가 좋아 완치가 가능하다. 지난달 1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진석 혈액내과 교수는 “가장 흔한 림프종인 DLBCL은 다른 고형암과 달리 치료제가 잘 들어, 완전 관해(암세포가 모두 없어진 상태)가 5년간 유지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며 “나이, 종양의 크기, 유전자 변이 유무 등 각 환자에 맞는 적절한 치료제를 쓰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5년차 혈액내과 전문의로, 악성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혈액질환에 대한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담당해왔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내과학 석·박사를 받았다. 현재 대한혈액학회 다발성골수종연구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DLBCL의 주요 증상은 뭔가.

“종양이 어디에 생기는지에 따라 다르다. 목에 생기면 이물감을 비롯한 불편함을 느끼고, 뇌에 생기면 경기, 배에 생기면 배가 아프고, 증상이 여러가지다. 발열, 식은 땀, 체중 감량 등 이 세 가지로 진단하지 않고, 암 덩어리의 조직 검사로 림프종을 진단한다. 림프종은 암 덩어리가 아주 커지기 전까지는 만졌을 때 딱히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목에 뭐가 잡힌다는 증상이 가장 많다. 60대 이상이 대부분이지만, 20대 후반에서 50대까지도 있다.”

–국내 DLBCL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

“우리나라는 림프종이 보통 1년에 6000명 정도 진단을 받는다. 림프종은 크게 호지킨, 비(非)호지킨으로 나뉜다.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영국인 의사 토머스 호지킨의 이름을 딴 것이다. 호지킨 림프종은 몸의 한정된 부분에 나타나지만, 비호지킨 림프종은 온 몸에 나타나고 종양이 어디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 환자 중 호지킨은 5% 정도 차지해 5700명이 비호지킨 림프종에 해당된다. 이 중 DLBCL은 약 45% 정도다. 매년 약 2500명이 DLBCL 진단을 받는 셈이다. 다만 갑상선암이 매년 3만5000명 진단받는 것을 고려하면 큰 규모는 아니다.”

–DLBCL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치료를 받나.

“고형암과 달리 대부분 수술이 불가능하다. 우선 진행 단계와 관계없이 항암 치료를 기본적으로 한다. 표적 항암제인 리툭시맙과 3개의 세포 독성 항암제, 스테로이드를 함께 쓰는 ‘R-CHOP’ 요법이 1차 표준치료다. 1차에서 3분의 2 정도가 완치된다. 나머지 3분의 1은 약이 들지 않거나, 완전관해에 도달했어도 5년까지 유지되지 못하고 1~2년 안에 재발한다.”

–재발 또는 불응 환자를 위한 다른 치료법이 있나.

“비교적 젊은 연령의 재발 환자들은 대부분 2차 치료인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한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과 같은 우리 몸에 필요한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조상세포이다. 보통 재발·불응 환자들에게는 고용량 항암제를 써서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를 시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파괴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하기 전에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해 얼린 뒤 치료를 마치면 다시 몸속에 주입해 정상 세포의 회복을 촉진하는 치료 방식이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면 재발 환자의 절반은 완치에 이른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이 불가능한 환자는 어떻게 하나.

“보통 고령인 환자들은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이 어렵다. 고령이 아니어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대표적인 3차 요법인 CAR(키메릭 항원 수용체)-T세포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CAR-T세포 치료는 환자 몸속에서 추출한 T세포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가해 다시 몸속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CAR-T세포 치료로 완치되는 비율은 3분의 1 정도다.”

–'꿈의 치료제’로 불리는 CAR-T로도 치료가 어렵나.

“CAR-T는 환자 몸속에서 T세포를 뽑아 유전자가위 기술로 조작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걸 하는 곳이 아직 국내에는 없다. 결국 미국으로 보내 치료제로 개발한 뒤 다시 국내로 반입해야 하는데, 최대 8주의 시간이 걸린다.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른 DLBCL 환자들이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CAR-T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이마저도 국내 모든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CAR-T 세포 치료는 국가 승인을 받은 10여곳에서만 가능하다. 기존에 진료받던 병원이 CAR-T 치료를 할 수 없다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 세브란스병원에도 제주도, 부산, 광주 등 지역에서 내원하는 환자 분들이 많다.”

–또 어떤 대안이 있나.

“이중(二重)항체 치료제도 3차 요법 중 하나다. 환자들이 치료받기엔 CAR-T보다 이중항체가 더 편하다. CAR-T는 만들어서 오는 데만 두 달 걸리지만, 이중항체는 오늘 쓰겠다고 하면 바로 처방이 가능하다. 이중항체는 항체가 달린 팔이 2개다. 암세포에 딱 달라붙어 한쪽 팔은 암을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몸의 면역세포인 T세포를 표적한다. 한 손으로는 직접 암세포에 어퍼컷을 날리면서 동시에 다른 손으로 T세포를 잡고 활성화시켜 암세포의 살상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중 공격이니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CAR-T와 이중항체는 각 환자 특성에 맞게 쓰인다.”

–치료 방법이 있는데 환자에게 더 필요한 게 있나.

“치료 비용 절감이 최우선 과제다. DLBCL은 분명 완치가 가능한 암종이지만, CAR-T, 이중항체 모두 치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혈액암은 초기 치료부터 높은 비용이 발생하고, 재발할수록 환자가 고가의 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돈을 벌어야 하는 제약사에 무조건 한국에만 저렴한 가격에 약을 공급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내 약가가 해외 약가 책정의 기준이 될 수 있어서, 약가를 낮추면 국내에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치료제 비용 부담에 어떤 해결책이 있나.

“건강 보험 재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항암제나 희소질환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에 별도 기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급여 적용되고 있는 품목 수가 포화상태라면, 효과가 좋은 신약이 나왔을 때 기존 치료제 가운대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은 품목을 비급여로 전환해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급여 적용이 가능한 항암제의 품목 수를 제한해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치료 비용을 적절히 관리해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균형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협력과 논의가 필요한데, 의료진들이 직접 변화를 추진하기는 어렵다. 변화를 주도할 전문 기구나 시스템이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대다수의 고형암은 수술이나 항암치료 후 재발하면 완치가 매우 어렵지만, 혈액암은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CAR-T 치료, 이중특이항체 등 치료 방법이 다양해 완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치료제 또한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치료받으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절대 포기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환자 중에 4기까지 질환이 진행된 이후 재발을 반복하고 자가조혈모세포 이식까지 받아야 했는데, 치료 5~6년 후 완치된 케이스도 있었다. 나 또한 완치된 환자들에게 ‘이제 그만 오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