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 강의실 모습./뉴스1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정부와 기업을 합쳐 2021년 기준 102조1352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었다. 미국과 중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2위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 대학의 R&D 수준은 30위 안에 들어간 학교가 한 곳도 없어 갈 길이 멀다. 지난 6월 발표된 2025 영국 QS의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대학 중 가장 순위가 높은 곳은 서울대로 31위에 불과했다. 그 뒤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53위), 연세대(56), 고려대(67), 포스텍(98)였다.

정부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해 정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이 10조엔(약 90조원)을 투입해 올해부터 시작한 ‘국제탁월연구대학’ 육성 정책의 한국 버전을 만들기로 했다. 소수 대학을 집중 지원해 세계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글로벌 최고 수준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한 시스템 혁신 방안’ 연구용역을 냈다. 내년 9월까지 진행되는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과기정통부가 연구중심대학 육성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KAIST와 포스텍을 비롯해 여러 연구중심대학이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연구지원 체계 미비 등 여러 이유로 세계적인 수준과 차이가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가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4대 과기원이 지금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올 한해 4대 과기원을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과기원 관계자와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갖고 제도 개선과 정책 마련을 고심했다. 이번 연구용역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대학원생 선발과 지원, 교원 채용과 평가부터 연구시설 운영과 연구지원 체계까지 전반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학에 대한 R&D 지원도 인건비와 시설·장비비, 간접비, 연구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할 방법을 모색한다.

과기정통부는 일본의 국제탁월연구대학 정책을 참조하고 있다. 국제탁월연구대학 제도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대학의 R&D 역량을 키우고,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2022년 발표한 지원 제도다. 총 10조엔 규모의 펀드를 만들고 탁월대학에 선정된 대학의 연구기반과 연구자, 연구시설에 최대 25년간 집중 지원하겠다고 했다.

최근 일본 동북부에 있는 도호쿠대가 첫 번째 탁월대학에 선정되면서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한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일본도 우리처럼 연구중심대학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고민이 컸다”며 “일본의 국제탁월연구대학 지원 정책을 벤치마킹해 국내 사정에 맞게 한국만의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연구자들은 정부의 지원 방안이 하루빨리 나와야 몇 걸음 앞서 있는 미국이나 유럽, 중국의 대학들과 국내 연구중심대학이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용훈 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국내 대학은 국가 전체 R&D 투자의 9.1%만을 차지하고 있고, 기초연구비에 들어가는 것만 놓고 보면 3.6%에 불과해 대학의 연구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기에는 만족할 만한 여건이라고 할 수 없다”며 정부가 대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