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디아 몸빈(돼지 자두) 열매를 먹는 거미원숭이. 스폰디아 몸빈 열매에는 알코올이 1~2.5%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다./니콜라스 차포이

종종 술에 취한 동물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공개될 때가 있다. 자연적으로 발효가 된 열매를 먹고 취한 동물들이다. 이런 동물들은 ‘불금’에 술을 마신 사람들처럼 비틀거리거나 숙취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해프닝처럼 여겨졌던 동물들의 ‘만취’ 모습이 드물거나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물들도 사람들처럼 의식적으로 알코올을 찾아 마시고 취한다는 것이다.

영국 엑서터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동물과 알코올에 대한 연구 논문을 조사한 결과, 야생 동물들이 자연에서 알코올을 정기적으로 섭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생태학 및 진화의 추세(Trends in Ecology & Evolution)’에 30일(현지 시각) 게재됐다.

전문가들은 약 1억 년 전부터 식물에 당분이 생기고, 이를 발효시키는 효모가 작용해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에탄올)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본다. 현재 생태계 대부분에 자연적으로 알코올이 존재하며, 습한 열대 환경일수록 그 비율은 높아진다. 과일 속 알코올 함량은 1~2%부터 10.2%까지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과일과 꿀을 섭취하는 많은 동물이 알코올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킴벌리 호킹스 엑서터대 연구원은 “알코올은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단 과일을 먹는 대부분의 동물은 어느 정도 알코올에 노출될 것”이라 설명했다.

알코올 섭취의 흔적은 동물의 유전자에도 남아있다. 동물들은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당분이 많은 먹이를 먹는 동물의 경우 해당 유전자의 기능이 진화했다. 특히 영장류나 나무두더지의 경우 알코올을 효율적으로 대사하도록 유전자의 기능이 최적화됐다.

동물들이 알코올을 일부러 섭취하는 목적은 아직 불분명하다. 매튜 캐리건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 교수는 “취한 상태는 야생에서 생존하기에 불리하다”며 “동물들은 열량이 필요해 알코올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다.

다만 연구진은 “알코올이 단순한 열량 공급원 이상의 이점을 줄 수 있다”며 “동물들이 발효 중 발생하는 알코올 냄새를 맡아 먹이 위치를 파악하게 해준다. 초파리의 경우 알코올이 들어있는 물질에 알을 낳아 기생충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이 사회적 유대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은 “알코올이 행복과 관련된 엔도르핀과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이완감을 주면서 사회적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를 검증하려면 알코올이 야생에서 어떤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앞으로 영장류의 알코올 섭취가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알코올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를 조사할 계획이다.

참고 자료

Trends in Ecology & Evolution(2024), DOI: https://doi.org/10.1016/j.tree.2024.0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