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관련 데이터를 들여다본 결과 실제로 의정갈등이 길어지며 응급실 서비스는 '셧다운'만 아닐 뿐, 마비에 가까웠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이송되는 모습./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비상 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의정갈등 때문이 아니라)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것이 근본적으로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윤 대통령이 의료 현장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응급실이 문만 열었을 뿐 의정 갈등 전처럼 원활한 의료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응급실의 현장 데이터를 들여다본 결과 실제로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응급실 서비스는 ‘셧다운(운영 중단)’만 아닐 뿐, 마비에 가까웠다. 응급실 문만 열고 진료할 뿐이지 인력 부족으로 중증환자를 입원시키거나 대형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여러 곳을 전전해야 하는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환자 수도 상대적으로 의정 갈등 전보다 늘어났다.

대학병원들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전공의가 거의 0명이라고 답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각 대학병원마다 비슷하거나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대학병원마다 응급의학과의 전공의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각 과에서 응급실 당직을 서는 전공의도 없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각 필요한 과에서 받아 입원시키는 일이 불가능했다. 서울, 수도권보다 특히 지방에서 심각했다.

그래픽=손민균

◇응급실서 일하는 전공의 0...중증 환자 연계 어려워

조선비즈가 서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를 조사한 결과 의정 갈등 전후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거의 줄지 않았다. 사직한 사람이 거의 없거나, 사직을 했더라도 다른 전문의를 채용해 자리를 메운 것이다. 오히려 다소 늘어난 곳도 있다. 하지만 전공의는 대부분 사직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13곳 중 응답한 9곳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남아 있는 곳은 단 2곳이었다. 이들 병원에도 각각 1명만 일하고 있었다.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인턴,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거친다. 전공의는 총 4~6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된 후 수련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우)라고 한다. 의정 갈등으로 대거 병원을 떠난 의사가 전공의이다.

본지 취재에서 A병원은 의정 갈등 전후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12명에서 12명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 9명은 모두 나가 현재 한 명도 없다. B병원은 전문의 13명이 사직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전공의 5명은 모두 사직했다. C병원은 7명이었던 전문의 수가 오히려 9명으로 늘었지만, 전공의는 8명 중 7명이 그만 뒀다.

전문의 수가 다소 줄은 곳도 있다. D병원은 12명이었던 전문의가 지금은 8명 남아 있다. 여기도 전공의 13명은 모두 나갔다. 서울 대형 병원인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문의 수 자체는 크게 줄지 않았지만 전공의들은 대부분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의들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응급실 문은 열려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의정 갈등 전이나 마찬가지로 응급실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실제 업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문의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전공의들이 모두 나갔기 때문에 실제 인력은 30~50% 사라진 셈이다.

A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없다 보니 응급의학과 교수들이 계속 당직을 서가면서 일하고 있다”며 “전에 비해 응급실에서 환자를 원활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갈등이 길어지며 응급실이 운영 중이기는 하나 중증환자를 입원시키거나 대형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문에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환자 수도 상대적으로 의정갈등 전보다 늘어났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구급차량이 응급 환자들을 실어 나르는 모습./뉴스1

◇응급실 환자 수 30% 감소했는데 뺑뺑이는 여전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 수 자체는 크게 줄었음에도 응급실 뺑뺑이 건수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늘 것으로 추정됐다. 실질적으로는 전체 환자 규모 대비 응급실 뺑뺑이 건수가 늘었다는 얘기다.

아직까지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응급실 방문 환자 수가 정확히 얼마나 줄거나 늘었는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의료계는 자체적으로 응급실 방문 환자 규모를 추산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의 수가 의정 갈등 전후로 30% 이상 줄었다”며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경증환자들이 알아서 안 오기도 하지만 응급실에서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 수는 줄었지만 응급실 뺑뺑이는 다소 증가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받은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뺑뺑이 건수는 2023년 4227건에 비해 2024년 상반기 2654건(한해 약 5300건 추정)으로 비슷하거나 다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응급실 방문 환자 규모 자체가 30%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응급실 뺑뺑이 건수는 상대적으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는 타 과 전공의 역시 거의 0명이라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가 출근한 비율은 8.7%에 불과하다. 1만3531명 중 1179명만 근무하고 있다. 한 병원당 평균 5.6명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비즈가 조사한 서울, 수도권 및 지방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당직 전공의 수는 0명에 가까웠다. 응급실에 들어온 중증 환자는 각 과가 연계해 입원시켜 진료해야 하는데, 이를 맡을 전공의가 없다는 얘기다. 응급실에 들어왔어도 결국 입원하지 못하고 나가는 환자 수도 상당하다는 말이다.

◇응급실 당직 전공의도 부재...전문과 입원 불가능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 중 경증 환자는 간단히 처치해서 돌려보내지만 중증 환자는 전문과에 연계를 해야 입원시켜서 수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진 환자는 정형외과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는 신경외과가 데려간다. 빅5 병원인 E병원 관계자는 “현재 전공의 사태 때문에 이 중증 환자를 데려갈 수 있는 과가 많이 줄어들었다”며 “응급실에 이런 환자들이 쌓이니까 새 환자가 누울 자리가 없어지는 것, 결국 마비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은 지방에서 특히 더욱 심각하다. 충남의 한 의료원 관계자는 “예전같았으면 응급실로 들어온 중증 환자를 충남대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단국대병원 등으로 전원을 시켰다”며 “그런데 전공의 공백이 길어지며 이들 대학병원이 환자를 받지 못해 결국 우리 쪽에서 입원을 시켜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료원 역시 과거에는 전공의들이 파견을 와서 일했지만, 의정 갈등으로 모두 사직하면서 중증환자를 돌보는 것이 여의치 않다.

전남의 한 의료원 관계자 역시 “예전에는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등으로 중증환자를 전원시켰지만 지금은 환자를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며 “정말 위급한 환자는 충북에 있는 대학병원에 까지 전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환자가 2배로 많아지는 추석연휴에는 더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할까 우려된다”며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하는 것 자체가 마비된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비상 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강원대병원, 세종 충남대병원, 건국대 충주병원은 야간 응급실 운영을 멈췄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이 외에도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응급실 관계자들은 “추석연휴 때는 응급실 방문자 수가 2배가량 늘어난다”며 “이번 추석 연휴가 고비”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추석 연휴는 전공의 없이 응급실이 돌아가는 첫 명절이다. 현재 응급실 서비스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일반 병의원이 문을 닫고 응급환자가 늘어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