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 환자의 생각을 글로 변환하는 초소형 칩이 개발됐다. 크기가 매우 작고 전력 소모가 적어 뇌에 직접 이식하거나 몸에 착용하는 장비에 활용할 수 있다. 연구가 발전하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이나 척수 손상 환자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EPFL) 연구진은 26일(현지 시각) 뇌 신호를 글로 옮기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발표됐으며, 지난 23일 국제 학술지 ‘IEEE 고체회로 저널’에도 실렸다.
뇌-기계 인터페이스는 뇌와 기계를 연결해 생각만으로도 컴퓨터나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을 말한다. 뇌가 몸에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해독한 다음, 기계가 그에 맞게 작동한다. 이번에 연구진이 개발한 칩 MiBMI는 ‘마이크로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영어 약자이다.
MiBMI 칩은 면적이 8㎟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다. 단 두 개의 작은 칩으로 데이터 기록이나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외부 컴퓨터가 필요 없고, 전력 소모도 적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뉴럴링크도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옮기도록 한 바 있지만, 칩에서 보낸 신호를 처리할 컴퓨터를 사용했다.
로잔 연방공대 연구진은 “기존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효율성과 확장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실용적이면서도 완전히 이식할 수 있다”며 “인체 조직에 최소한 변화를 줘 실제 환경에서 사용하기에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MiBMI를 활용해 뇌의 복잡한 신호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글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이 어떤 글자를 쓰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뇌에서 독특한 신호가 나오는데, 이를 감지해 생각한 문자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수많은 뇌 신호를 모두 처리하지 않고 글자에 해당하는 특정 신호만 추려내기 때문에 시스템의 전력 소모가 낮고, 정확도는 높았다고 연구진은 밝혔. 지금까지 문자 31개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으며, 정확도는 91%에 달한다.
이번 연구는 집적 회로와 신경 공학, 인공지능(AI) 기술이 모두 더해진 결과다. 연구진은 “뇌-기계 인터페이스 분야에서 여러 스타트업이 부상하는 가운데 통합과 소형화를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며 “초소형이면서 고성능의 시스템을 활용하면 훈련 시간도 단축된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진은 더 많은 문자와 복잡한 신호를 처리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를 이끈 마샤 쇼아랑 로잔 연방공대 교수는 “다른 연구진과 협력해 다양한 응용 방식도 탐색하고 있다”며 “목표는 신경계 질환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환자들에게 더 광범위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칩은 신경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 작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아르토 누르미코 미국 브라운대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전자공학’에 뇌 신경세포를 모방해 소금 한 알보다 작은 초소형 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칩 수천 개를 뇌 표면에 붙이기만 하면 뇌 신호를 효율적으로 전송, 수신할 수 있는 무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꾸릴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 자료
IEEE Journal of Solid-State Circuits(2024), DOI: https://doi.org/10.1109/JSSC.2024.3443254
Nature Electronic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928-024-01134-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