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사옥 앞 회사 로고가 적힌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로이터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성장을 멈추면, 덴마크도 성장을 멈춘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이 다룬 ‘덴마크 경제와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에 대한 진단을 2일 공유했다.

지난 30일(현지 시각) NPR은 덴마크 경제에서 노보 노디스크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가 성장을 멈추면 덴마크도 성장을 멈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핀란드가 빠졌던 소위 ‘노키아의 함정(Nokia trap)’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한때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까지 차지했으나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하지 못해 몰락하면서 핀란드 경제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NPR은 이를 피하려면 여러 덴마크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뇨·비만 치료 신약으로 전 세계 시장에 열풍을 일으킨 노보 노디스크는 현재 덴마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1923년 설립된 덴마크 제약 회사로 당뇨병 치료제가 주력 제품이다.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인슐린 치료제의 90%를 공급하는 3대 제약사 중 하나로, 2023년 말 유럽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됐다.

특히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의 당뇨 치료제인 ‘오젬픽’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개발해 급성장했다. 시가총액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 전체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인 4060억달러도 뛰어넘었다. 덴마크 경제부 장관은 최근 경제 보고서에서 제약산업을 31번이나 언급했다.

NPR은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보 노디스크의 부상이 덴마크 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의약품 판매가 급증하면서 덴마크 수출을 촉진하고 덴마크에 많은 외화를 유입시켰다. 그런데 이런 성과가 오히려 덴마크 통화 정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매출 대부분이 북미 시장에서 나온다. 회사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의 상당 부분을 덴마크 통화인 크로네로 환전해 덴마크에서 직원 급여와 세금을 지불하고 덴마크에 공장을 확장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크로네 통화 가치 상승 압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크로네는 덴마크가 환율을 유로로 고정하기 때문에 가치가 많이 오를 수 없다. 결국 덴마크 중앙은행은 통화 강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해 대응해야 했다.

실제 단스케은행 외환 시장·금리 전략 책임자인 옌스 네르빅 페데르센은 블룸버그에 “체중 감량 약이 덴마크의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당국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크로네의 가치는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노보 노디스크 그룹이 통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노키아 3310. /노키아·조선DB

유럽에선 덴마크 경제에서 노보 노디스크의 지배력이 커진 것을 두고 북유럽 이웃 국가 핀란드가 빠진 ‘노키아의 함정(Nokia trap)’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경고음도 일찍이 나왔다.

2000년대 초반 핀란드 노키아는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였다. 전성기에 노키아는 핀란드 성장의 약 4분의 1을 담당했고 핀란드 수출의 20% 이상을 창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빼앗겼다.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고 핀란드 경제는 휘청거렸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핀란드의 경제 쇠퇴는 더 가팔랐고 위기 이후 회복은 훨씬 더뎠다. 당시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경제를 몰락시켰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핀란드 총리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했다.

NPR은 “노보 노디스크가 조만간 노키아와 같은 붕괴를 겪을 가능성은 작지만, 향후 노보 노디스크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에서 노보 노디스크 의약품에 대해 가격 통제를 논의하고 있고,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의 특허가 10년 이내 만료되기 때문에 복제약(제네릭) 제조사들과 경쟁해야 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NPR은 “핀란드가 겪은 노키아의 함정을 피하려면, 결국 덴마크의 경제 성장이 한 회사가 아닌 여러 회사에 의해 돌아가게 해야 한다”며 “덴마크가 노보 노디스크의 성공을 경제 전체의 성공과 동일시하지 않고, 핀란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