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비교하자면 연구자들은 선수이고, 프로젝트 매니저(PM)는 감독입니다. 우리는 이미 훌륭한 연구·개발(R&D) 선수들이 있습니다. 선수들을 이끌고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처럼 혁신에 도전하는 PM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 21일 한국연구재단 창립 15주년 기념 특별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R&D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법·제도·예산 등 모든 기반에 변화가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퍼즐은 PM”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프로젝트 매니저가 연구 개발을 이끌어야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은 ‘새로운 혁신의 길, R&D 시스템 대전환’이라는 주제로 혁신 연구 방향을 모색하고자 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계 도전 프로젝트’, 산업부의 ‘알키미스트’ 등 정부의 혁신 연구 과제 관계자를 포함한 산·학·연 전문가 300여 명이 참석했다.
정부가 올해 혁신·도전 R&D 지원을 위해 소재, 기후·에너지, 바이오 헬스 등 연구 주제에 PM을 선발하는 등 패러다임 전환에 나섰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력·예산 운용 등 연구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PM의 권한이 작아 혁신적 도전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혁신 도전 R&D의 대명사인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사례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DARPA는 민간전문가인 PM을 중심으로 한 도전적 연구로 GPS(위성 항법 시스템), 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혁신 성과를 이뤄낸 기관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DARPA가 미국에서 신뢰받는 시스템으로 정착하는 데 무려 20년이 걸렸다”며 “그만큼 시간을 들여야 하고, 한국적 상황과 정서에 맞는 제도 전환과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영진 한국연구재단 한계도전전략센터장은 “DARPA는 PM이 100여 명이고 이들을 지원하는 민간 조직이 500여 명에 달한다”며 “선진 R&D 지원 체계로 전환하려면 연구 행정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발제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는 “혁신 도전 연구는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씩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더라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혁신형 과제 전반을 관리할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정민형 전 과기정통부 혁신 도전 프로젝트 총괄추진단장은 “정부 R&D 사업에서 책임과 권한을 민간 전문가에게 위임해 임기 동안은 믿고 맡기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