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미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의약품 전문회사인 한미그룹은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아내 송영숙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사장, 그리고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사장 간에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쥐고 소재·에너지 전문 기업 OCI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경영에선 물러나 있다가 최근 경영 복귀를 선언했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는 이사회와 임종윤·종훈 사장이 각각 제안한 양측의 신규 이사 후보들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인다. 임종윤 사장 측의 후보들이 이사로 선임되면 두 형제의 경영권 복귀를 통해 한미그룹에 전면적인 변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반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추천한 임주현 사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등이 선임되면 한미와 OCI 통합 작업은 급물살을 탄다. 임종윤 사장 측은 22일 본지에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최근 지지를 표명했다”며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송 회장 측은 “개인 주주들의 의중이 공개되지 않았고, 결국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더 많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주총 결과로 더 이상 모녀와 형제간 다툼이 아닌, 한미그룹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격화되는 ‘표심 경쟁’
이번 주총에선 결국 주요 주주인 신동국 회장(지분 11.52%)과 국민연금(지분 7.66%)의 의중이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신 회장 측은 “그동안의 경영 성과에 대해 따져보고 결정할 예정이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경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다음 주에 어디를 지지할지 명확하게 밝힐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임종윤 사장은 주총을 앞두고 “한미약품을 5년 안에 시가총액 50조원 그룹에 진입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4조2800억원 규모에 머물러 있는 한미약품 시총을 10배 이상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22일 본지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밝혔다. 임 사장은 “지금까지 모은 역량을 바이오의약품으로 확대해 의약품 CDO(위탁개발)·CRO(임상시험수탁)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으로 사내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 및 항암, 대사질환, 자가면역, 희소질환 등 다양한 적응증에 대한 설루션(solution)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1조원 이상의 투자 유치로 100개 이상의 바이오 약품을 생산할 것”이라고도 했다.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 측은 임종윤 사장의 구상에 대해 “도전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매우 비현실적이고 실체가 없으며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100개 이상의 바이오의약품을 제조하겠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 제조 공정의 기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오의약품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생산 방식에 큰 차이가 있는데, 이를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한미그룹은 자금이 풍부한 OCI와의 이종결합을 통해 비만치료제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면서 상속세 등 위험 요소들을 정리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미의 미래’ 걸린 주총
경영권 분쟁이 가열되는 이유는 양측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을 비롯한 모녀의 지분은 21.86%, 형제의 지분은 20.47%다. 주총까지 각자 우호 지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주총을 앞두고 양측은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벌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새로운 경영 목표를 발표하는 것은 결국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개인 주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총에 앞서 형제가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주목된다. 두 형제는 한미와 OCI 통합 과정에서 이뤄진 제3자 배정 유상 증자가 무효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가처분 인용 여부는 주총 전에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