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화장품 사용을 금지했을 정도로 여성 인권을 제한한 이란에서 무려 4000년 전에 이른바 ‘립스틱’을 사용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립스틱과 매니큐어 등을 금지했던 이란은 이후 규제를 다소 완화했지만, 여성의 화장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런 나라에서 수천년 전에 입술 화장품이 쓰였다는 것은 당시 메이크업 유행의 첨단을 달렸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 연구진은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 할릴강 인근 묘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분석해 약 4000년 전에 립스틱처럼 입술 화장용으로 쓰인 것을 밝혀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은 묘지에서 발굴된 원통형 용기와 내용물을 분석했다. 이 용기는 세로 약 5㎝, 가로 약 2㎝로 기원전 1936~1687년 사이 제작된 것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 확인됐다. 용기 안에는 분말 형태의 물질이 들어 있었다. 성분을 분석해 보니 붉은색을 띄는 광물 ‘적철석’과 식물성 기름 등이었다. 현대의 립스틱에서 많이 쓰이는 성분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단단한 립스틱보다는 진한 물감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번 연구는 4000년 전 립스틱의 내용물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의 립스틱과 비슷하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입술 화장용으로 밝혀진 유물은 앞서 2001년 홍수로 묘지의 흙이 휩쓸려 내려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지역은 청동기 시대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마르하시 문명의 고위급 인사들의 거주지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 립스틱과 함께 발굴된 보석, 무기, 도자기 등은 도굴꾼에 의해 약탈돼 골동품 시장에 팔렸다가 회수됐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발견된 화장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립스틱이 이란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