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는 우주 비행사가 인공위성의 잔해, 즉 ‘우주 쓰레기’에 부딪혀 우주 미아가 되면서 시작한다. 영화 속 우주 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민간 우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우주 쓰레기가 실제 우주 개발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은 작년 12월 기준 1만6990기. 2020년 초(9600기)보다 약 77%가 증가했다. 우주 쓰레기의 총질량도 1만1500t으로 4년 전(8800t)보다 2700t이 늘었다.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발사체(로켓) 팰컨9이 1회 발사에 위성을 최다 60기 우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로켓 기술이 발전해 민간 위성 발사가 활발해진 영향이다. 스페이스X는 이미 통신 위성(스타링크) 5500기를 지구 저궤도에 띄웠다.
이렇게 날로 늘어나는 우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도 나섰다. 위성을 붙잡아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시키는 방식으로 제거하는 ‘포획 위성’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우주 물체의 위치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500㎏ 이하 소형 위성을 개발한다”며 “2027년 누리호 6차 발사 때 실어 우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산 포획 위성 개발에 2028년까지 예산 447억원을 책정했다. 과기정통부는 “우리별 1~3호, 국내 대학의 큐브 위성 등 우주 잔해를 포획해 지구 대기권에서 소멸시키는 기술을 우주에서 검증하겠다”고 했다.
◇로봇 팔 뻗거나 자석처럼 끌어당겨 포획
한국에 앞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일본·중국·러시아 등 세계 우주 강국들은 포획 위성 개발을 진행 중이다. 포획 위성의 핵심은 ‘우주 물체 능동 제어’로, 수명이 다한 위성이나 쓰레기에 접근해 로봇 팔이나 그물 등을 활용해 위치나 궤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유럽우주국(ESA)은 2020년부터 스위스 우주 스타트업 ‘클리어스페이스’와 함께 우주 쓰레기 제거 연구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클리어스페이스 로봇은 네 팔을 뻗어 소형 위성을 감싸 대기권으로 진입해 소각한다. 목표 발사 시점은 내년이다.
일본의 스타트업 아스트로스케일이 자체 개발한 포획 위성 ‘엘사’는 강한 자성(磁性)을 기반으로 우주 쓰레기를 모아 대기권으로 진입시켜 태우는 위성이다. 2021년 발사한 실험용 엘사는 자기 중량(17㎏)의 10배인 폐기 위성(175)㎏에 붙어 조작하기를 시연했다. 아스트로스케일은 올해 이 포획 위성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포획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트랜스아스트와 계약했다. 이 회사는 우주에서 팽창하는 위성 포획용 가방을 보낸 다음, 이 가방이 위성을 포획하면 지구로 다시 당겨 올 예인선을 보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위성 수명 연장, 우주 무기로도 사용 가능
이렇게 개발한 포획 위성은 단순히 우주 쓰레기를 제거하는 일뿐 아니라, 우주에서 위성을 포획한 뒤 조작해 수명을 늘리거나 수리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2020년 미국 우주 기업 노스럽그러먼이 만든 위성 ‘MEV-1′은 상공 3만6000㎞에 떠있는 통신 위성 ‘인텔샛901′과 접근해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위성은 원래 수개월 뒤 수명이 다할 예정이었지만, 연료 주입 성공으로 활동 기한이 5년 연장됐다. 위성 수명을 늘려, 최종적으로 우주 쓰레기양을 줄이는 것이다. 최근 영국도 클리어스페이스의 포획 위성을 활용해 영국 정부 위성에 연료를 추가 주입, 위성 수명을 늘리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포획 위성 기술이 우주 전쟁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국의 위성을 포획해 제거하거나 궤도를 바꾸는 방식으로도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2년 중국의 포획 위성 ‘SJ-21′ 은 자국의 다른 위성 ‘베이더우’를 로봇 팔로 잡아 3000㎞를 운반했다. 포획 위성의 사용 목적에 따라, 다른 국가의 위성을 방해하는 데도 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