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장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에게 부과된 상속세가 이번 통합의 단초가 됐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익만 생각했다면 OCI와의 통합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연구·개발(R&D) 집중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여러 방안 중 심사숙고해 과감하게 내린 결단입니다.”
8일 서울 송파구 한미사이언스 본사에서 만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은 소재·에너지 전문 기업 OCI와의 통합에 대해 “이종 산업의 탄탄한 기업과 대등한 통합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지난달 OCI와의 통합을 전격 발표한 한미그룹은 오너 일가가 모녀와 두 아들로 갈라져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고 (故)임성기 회장의 아내인 송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추진한 OCI 홀딩스와의 합병을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대하고 있다.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통합을 위한 제3자 배정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송 회장은 “가족 간의 다툼에 승자가 어디 있겠나”라며 “문제가 빨리 종결되면 두 아들도 돌아올 것으로 보고 엄마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송 회장은 고 임성기 회장 시절 한미그룹의 공익 재단 법인 가현문화재단을 설립했고 한미약품 고문으로 재직하다 임성기 회장 타계 후 그룹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가현문화재단 운영 중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모친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나 친분을 쌓은 것이 최근 OCI와의 통합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회장은 “임성기 회장 사망 후 2~3년간 여러 기업과 해외 사모 펀드 등에서 한미의 지분을 사겠다는 제안이 많았다”며 “그중에서도 OCI가 가장 평판과 자본력이 좋고, 그쪽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통합이) 성사된 것”이라고 했다.
송 회장은 지금까지의 결정에 가족들의 합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 회장께서 돌아가신 후 둘째 아들이 ‘어머니께서 회장 자리에 오르시라’고 최초로 제안했고, 가족과 경영진 모두 찬성해서 그렇게 했다”며 “또 상속세 문제로 고민할 때 첫째 아들이 ‘펀드에 지분을 넘기는 것은 회사를 파는 것이고 한미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니 절대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조언했고, 그래서 한미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은 것이 OCI와의 대등한 통합”이라고 했다.
이종 산업과의 결합을 택한 배경에는 과거 동아제약 지분 취득 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송 회장은 “당시 임성기 회장이 서로의 경영권을 존중하면서 동아제약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업력이 오래된 동아제약을 한미약품이 집어삼키려고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며 “결국 동아제약과의 협력을 포기했고 동종 기업 간 통합이나 인수·합병이 극심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적 판단에서 이종 기업과의 통합 모델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통합 후에는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 밑의 중간 지주사가 돼 결국 경영권 방어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계약서에도 분명히 명시했고, OCI에서도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확신을 줬기 때문에 통합이 결정된 것”이라며 “OCI홀딩스의 이름도 차후 완전히 새로운 사명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형제 측이 본인들을 한미사이언스 신규 이사에 포함하는 안을 주주 제안하면서 이달 말 예정된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표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모녀와 형제 측의 지분이 비슷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12%를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이 캐스팅보트로 꼽힌다. 송 회장은 “(회장직을 맡은 후) 최근 3년간 우리 회사 50년 역사 중 최고 실적을 올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라며 “주주들께서도 지금까지 그래 오셨던 것처럼 ‘한미의 길’을 믿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