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반도체,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인간이 장애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내고 있다. 의학이 아닌 공학으로 질병을 해결하고,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척수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의 보행을 돕는 외골격 로봇이다. 척수는 재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번 마비되면 휠체어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휠체어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2억명에 이르기 때문에 가장 빠른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리워크 로보틱스를 비롯한 업체들은 입으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으며 걸을 수 있고, 재활 훈련까지 가능한 외골격 로봇을 선보였다. 외골격 로봇은 장애인이나 노인의 보행은 물론 공장 근로자의 피로를 덜어주고,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 수 있게 하는 등 산업 현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기업들도 이미 상용화 수준의 외골격 로봇을 개발했다.
스위스 로잔 공대 연구팀은 파킨슨병 환자의 척수에 전기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보행 능력을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파킨슨병은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병이 진행될수록 걷다가 갑자기 다리가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리모컨으로 끄고 켤 수 있는 신경 자극기를 척수 하부에 이식하고 다리 움직임에 연관된 신경에 직접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환자의 보행을 개선했다. 기존에는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뇌 심부 자극술’이 사용됐지만 합병증과 후유증이 문제였다. 이제는 신경 다발이 모여 있는 척수를 직접 자극해 보행을 개선하면서 합병증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족이나 의수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유망한 암벽등반가였던 휴 헤르 MIT 교수는 열일곱 살에 불의의 사고로 무릎 밑을 절단한 뒤 실제 다리처럼 움직이는 로봇 의족을 만들었다. 손톱 정도 크기의 작은 컴퓨터칩들이 달려 있는 의족은 감각 정보를 받아 관절의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춤을 추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헤르 교수는 “이제 기술은 인류 진화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