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식물은 조금이라도 더 태양빛을 받기 위해 잎과 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 그중에서도 덩굴의 생존 방식은 독특하다. 자신의 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 다른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정상을 차지한다. 이렇게 덩굴처럼 장애물을 타고 넘으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됐다.
이탈리아기술원(IIT) 연구팀은 빛이나 중력 등 외부 자극에 반응해 성장하며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필로봇(Filobot)’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필로봇은 덩굴처럼 장애물을 타고 넘어가거나 하늘로 기어오르며 움직일 수 있다. 로봇의 움직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맞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게재됐다.
필로봇은 뱀 같은 몸통에 원뿔 모양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몸통 끝에 철사처럼 가는 플라스틱 필라멘트가 있는데, 이를 머리 쪽으로 끌어올린 뒤, 천천히 회전시켜 3D(차원) 프린터처럼 필라멘트로 몸통을 만들며 늘어난다. 마치 식물이 자라듯 자기 몸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분당 약 7㎜의 느린 속도로 성장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으로 장애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필로봇은 머리에 장착된 광센서, 자이로스코프 등을 기반으로 빛을 감지한 뒤 필라멘트를 녹이는 온도와 증착 속도에 변화를 주면서 방향을 튼다. 이를 통해 나무와 같은 물체를 만나면 이를 감고 올라갈 수 있다. 지지대가 있을 때는 에너지가 적게 들기 때문에 더 빠르게 몸을 성장시킬 수 있으며, 지지대가 없어도 몸통을 더 뻣뻣하게 고정시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다.
필로봇은 자유롭게 자신의 몸을 뻗을 수 있는 만큼 활용 분야가 다양하다. 건물이 무너진 사고 현장에서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들어가 열원을 찾아 나설 수 있고, 특정 물체를 가운데 두고 똬리를 틀 듯이 몸을 꼬아 보호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필로봇은 위험한 지형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탐색 활동을 펼칠 수 있고, 복잡한 형태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