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유해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의 눈이나 피부에 화학 약품을 반복적으로 떨어뜨린다. 실험에 투입되는 동물은 쥐, 토끼, 원숭이, 돼지 등 다양하다. 이렇게 동물실험으로 매년 수억 마리가 희생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물 대신에 실험실에서 배양한 생체 조직이나 유사 미니 장기(臟器)를 실험에 활용하는 기술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동물실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전임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동물실험 의무 조항을 없앴다. 유럽연합(EU)도 의약품 제조를 위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동물실험 효과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의 영향을 받았다.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 등이 확인됐다 해도 인간과의 생리적 차이로 인해 실제 임상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확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주요 신경 퇴행성 질환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의 전임상 및 임상 실패율은 100%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바이오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아크로셀바이오사이언스는 피부, 연골 같은 생체 조직을 맞춤형으로 만들어 전임상에 활용할 수 있는 ‘아크로툴’을 최근 출시했다. 기존에는 생체 조직을 만들어도 세포 밀도가 부족해 원하는 크기와 형상을 구현하는 게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생체 조직 구조체를 만들려면 일종의 ‘철근’ 역할을 하는 지지체가 필요했는데, 지지체가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을 방해해 수백 나노미터 이상의 구조체를 만들기 힘들었다.
아크로셀바이오사이언스는 대량으로 배양한 세포를 큰 덩어리로 뭉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세포에 유기 고분자를 첨가해 시트 형태로 쌓아 배양하면 지지체 없이도 1㎝ 이상 크기의 세포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제 동물 조직과 비슷한 세포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크로셀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시장이 열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간 장기와 유사한 ‘오가노이드(Organoid)’로 전임상 시험을 대체하려는 시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니 장기’로 불리는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뇌, 심장, 피부 등 신체와 동일한 구조로 만들 수 있다. 동물실험보다 정확성이 높고 동물실험으로 알아내지 못한 부작용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는 오가노이드 연구를 위한 ‘인체 생물학 연구소(IHB)’를 설립하고, 오가노이드를 신약 개발과 임상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인체의 생리적 특성을 모사한 생체 조직 칩이나 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니콜 클라인트루어 박사는 “기술적으로 인체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동물실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