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을 펴는 등 미용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던 보툴리눔 톡신이 신경계 질환에서 치료 효과를 보이면서 적용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용을 위한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업체들은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임상을 앞다퉈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툴리눔 톡신을 대부분 미용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치료용 톡신 시장이 전체 시장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의 오리지널 제품인 애브비의 ‘보톡스’는 눈꺼풀 경련, 소아 뇌성마비 환자 경직, 경부근 긴장 이상 등 다양한 적응증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치료용으로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도 2022년 72억1000만달러(약 9조4000억원)에서 2032년 179억8000만달러 규모로 연평균 9.5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활발한 임상으로 적응증 확대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균에 의해 생성된 신경독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 무기로 개발하려 했을 정도로 독성이 높다. 극미량의 보툴리눔 톡신을 주입하면 근육 수축을 일으키는 신경 신호 전달을 방해해 일시적으로 근육이 마비되는데 이를 활용해 주름을 펴거나 근육의 떨림을 가라앉힐 수 있다.
보툴리눔 톡신의 적응증은 연구를 통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클레르몽오베르뉴대 연구팀은 최근 보툴리눔 톡신이 ‘본태성 두부 진전’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본태성 진전은 머리나 손과 같은 신체 부위가 떨리는 신경계 질환으로 아직 원인은 물론 근원적 치료법도 개발되지 않았다. 보툴리눔 톡신으로 관련 치료가 이어지고 있지만 무작위 임상을 통해 효과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본태성 두부 진전 환자 117명을 대상으로 62명에게는 보툴리눔 톡신 1.5ml, 55명에게는 위약(가짜약)을 연구 당일과 연구 12주 차에 투여했다. 환자들은 대부분 중간 정도의 머리 떨림을 보였다. 투약 18주 차에 환자의 증상 개선 정도를 분석하니 보툴리눔 톡신 투약군의 31%, 위약군의 9%가 떨림 증상이 완화됐다. 다만 효과가 24주까지는 지속되지 않았다.
◇치열한 ‘치료 적응증 확보’ 경쟁
국내 보툴리눔 톡신 업체들도 임상 시험과 적응증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웅제약은 최근 자사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의 편두통 치료 특허를 미국 파트너사 이온바이오파마를 통해 미국 특허청(USPTO)에서 취득했다. 특허는 2041년까지 독점 권리가 보호되며 기존에 비해 투여 횟수를 줄이는 등 편의성을 개선한 점을 인정받았다. 대웅제약은 이 밖에도 경부근 긴장 이상, 위 마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탈모에 대한 치료 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휴젤은 지난 2010년 자사 보툴리눔 톡신 제제 ‘보툴렉스’의 눈꺼풀 경련 적응증을 미용 분야보다 먼저 허가받은 뒤 치료 적응증을 늘려오고 있다. 현재는 눈꺼풀 경련, 뇌졸중 후 상지 근육 경직, 소아 뇌성마비 첨족기형 등의 적응증을 가지고 있으며 과민성 방광, 경부근 긴장 이상, 양성 교근 비대증 등의 적응증을 추가하기 위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서 가장 많은 적응증을 확보하고 있는 메디톡스는 자사 메디톡신의 치료 적응증으로 소아 뇌성마비 환자의 첨족기형, 경부근 긴장 이상, 뇌졸중 후 상지 근육 경직 등을 획득하고 본태 눈꺼풀 경련 임상 3상에 진입해 있다. 보툴리눔 톡신 업계 관계자는 “미용 시장을 놓고 치열한 치킨게임을 벌여온 국내 업체들 입장에서는 치료 영역으로 시장을 넓혀 장기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