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무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잠을 방해하는 귓가의 날갯소리와 물린 자리의 가려움뿐 아니라 그것이 옮길 수 있는 여러 질병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모기가 매개하는 질병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원충에 의한 기생충 질환으로, 원충이 있는 모기가 사람을 물 때 감염된다.
한반도는 모기의 서식에 나름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인지 말라리아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학질, 고금, 자라배 등으로 불렸고, 최소한 고려 시대부터 한반도의 풍토병이었다. 한국 최초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의 초창기 진료 보고서에 따르면, 말라리아는 외래를 방문한 조선인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질병이었다. 지석영이 우두법을 처음 배운 곳으로 유명한 부산의 제생의원에서도 조선인 환자 중 말라리아가 가장 많다는 통계를 냈다.
다행히 말라리아에 효과적인 치료제는 비교적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바로 키니네다. 키니네는 기나나무 추출물로, 남미의 잉카문명에서 개발되어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됐다. 조선에는 개항기부터 수입돼서 ‘금계랍’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통됐다. 그러나 치료제가 있었음에도 완전한 방역은 불가능했다. 방역의 열쇠는 모기였다.
한반도에서 국가 차원의 말라리아 방역 사업이 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식민 당국은 키니네를 무료로 배포하고 모기장 사용을 장려했으며, 물이 고인 웅덩이를 없애거나 그 위에 석유를 뿌리는 방식으로 모기의 발생을 억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드넓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쌀의 공출을 위한 논농사의 확대와 물을 저장하는 관개시설의 확충은 모기의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그로 인해 1920년대 초 6만여 명이던 말라리아 환자는 1930년대 후반 10만여 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모기 구제가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DDT가 유입되면서부터였다. DDT는 독성 때문에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70년대까지 뛰어난 살충제로 인정받으며 방역에 널리 쓰였다. 특히 세계보건기구가 DDT를 활용한 강력한 말라리아 박멸 사업을 1959년부터 1969년까지 한국에서 전개하면서 모기와 말라리아는 급격히 감소했고, 1979년 한국 정부는 마침내 말라리아 퇴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하던 군인 1명이 말라리아에 걸린 것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말라리아가 다시 빠르게 확산됐다. 정부의 방역 노력으로 한때 4000여 명에 달했던 환자 수는 이제 500명 내외로 줄었지만 말라리아를 재박멸하겠다는 목표는 좀처럼 달성되지 않고 있다. 기후 변화와 살충제 내성이 모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라리아 모기는 작년에 비해 9주나 일찍 나타났고 환자 수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배 많아졌다. 변화한 환경에 적응한 모기와 그를 없애려는 사람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말라리아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