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조류 인플루엔자(AI)에 저항성이 강한 닭이 세계 최초로 탄생했다. 지난 11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영국 에든버러대와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ICL) 공동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유전자 교정을 통해 고(高)전염성 AI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유전자 교정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가축과 곡물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질병에 강한 카카오 나무나 알이 많은 옥수수, 근육량이 많은 돼지 등을 만들어냈다. 이런 유전자 교정이 수십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GMO)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유전자 교정 닭, 조류 인플루엔자 90% 예방
공동 연구팀은 앞선 연구에서 A형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에게 침투한 뒤 닭의 특정 단백질에 의존해 증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닭의 ANP32A·B·E 등 세 가지 단백질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중에서도 ANP32A에 집중했다. 바이러스가 이 단백질과 결합해 증식하지 못하도록 아예 유전적으로 해당 단백질을 제거하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연구팀이 활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다. 크리스퍼-카스9은 ‘분자 가위’로 알려진 카스 9과 편집을 원하는 DNA까지 안내하는 RNA를 섞은 것으로 DNA의 특정 부위를 교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먼저 병아리의 혈액에서 암·수 원시생식세포(정자·난자로 발달하기 이전 단계의 전구체)를 추출한 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원시생식세포 내의 ANP32A 단백질 유전자를 잘라냈다. 이후 원시생식세포를 닭에게 주입한 후 이 닭들을 교배해 유전자 교정이 된 병아리를 부화시켰다.
이렇게 만든 닭을 일반적인 양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노출시키자 90%가 감염되지 않았다. 감염된 10%도 낮은 전염성을 보였다. 반면 함께 실험에 동원된 일반 닭들은 모두 감염됐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양을 1000배 늘리는 극한 상황을 실험하자 유전자 편집 닭의 절반이 감염됐다. 연구팀은 “일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ANP32A 단백질 대신 ANP32B와 ANP32E를 활용해 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세 가지 단백질에 관여하는 세 유전자를 모두 편집한 닭을 만들면 완벽한 면역력을 갖춘 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 교정 곡물 美·日 선 이미 상업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바이러스에 강한 닭뿐 아니라 지방이나 단백질이 많은 가축, 병충해에 강한 작물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2011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발된 이후 과학자들은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2021년 긴장을 완화하는 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을 다량 함유하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토마토를 판매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스타트업 페어와이즈가 유전자 교정으로 후추 향을 제거한 겨자잎 샐러드를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업화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GMO처럼 안전성이 가장 큰 문제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강한 닭을 개발한 영국 연구팀 또한 이번 연구 결과가 실제 축산업에 적용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교정이 오히려 더 강한 바이러스의 출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GMO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있는 것처럼 유전자 교정 작물(NGT)도 초기 도입 시 논쟁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동식물에게 원래 없던 유전자를 넣어 재조합하는 GMO에 비해 크리스퍼는 기존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로 안전성을 더욱 담보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2018년에, 일본은 2019년에 NGT 규제를 줄이고 상업화를 가능하게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NGT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시판이 금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