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3일(현지 시각)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 메트릭스 M의 사용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연간 1억 회 분량 이상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값싼 말라리아 백신이 허가를 받은 것이다. 지난 2021년 영국 제약사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이 세계 최초의 말라리아 백신 모스퀴릭스를 출시한 지 2년 만이다. 두 백신의 효과는 거의 유사하지만 메트릭스 M의 가격이 모스퀴릭스의 절반 정도로 저렴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류가 모기와 벌이고 있는 기나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모기 개체수를 줄이는 방역 수준을 넘어 치료제·백신을 개발하거나 유전자 조작으로 불임 모기를 만드는 첨단 기술들을 통해 모기로 인한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가위로 병 옮기지 않는 ‘면역 모기’
국제 비영리단체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불임 모기를 자연에 방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WMP는 기생충에 노출돼 불임이 된 모기를 아프리카와 남미에 지속적으로 방사하고 있다. 영국 킬 의대 연구진은 지난해 2월 세계 최초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불임이 된 모기들을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지역에 풀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모기 박멸 계획은 한 세대 만에 명맥이 끊겨 지속적으로 불임 모기를 방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드라이브’가 각광받고 있다. 모기의 유전자를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도록 바꿔나가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말라리아 이니셔티브 연구진은 지난달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모기가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전자 드라이브 방식을 적용해 이 유전자를 전체 모기에게 전파한다는 계획이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지난 2018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특정한 유전 형질을 다음 세대에 빠르게 전달하는 기술이다. 자연 유전 법칙으로는 생명체가 부모로부터 한 개씩 두 개의 대립 유전자를 물려받게 돼 50%의 확률로 조작된 유전 형질이 발현된다. 반면 유전자 드라이브는 유전자 가위에 조작된 유전 형질을 탑재해 모기 알에 삽입, 특정 유전 형질을 이어받지 않은 염색체의 유전 형질도 바꿈으로써 자손 세대에 조작된 유전 형질이 거의 100%의 확률로 전달되도록 한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모기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마치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유전자 조작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말라리아 백신 뒤늦게 생긴 이유는
유전 공학적 방법으로 모기의 질병 매개를 줄이는 동시에 관련 치료제, 백신 개발도 활발하다. 문제는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질병 대부분이 백신 개발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말라리아는 몸속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서 면역 세포로부터 숨어 있기 때문에 한 번 걸려도 자연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말라리아의 경우 매년 6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을 포함해 수십 개국이 여전히 말라리아 발생국으로 분류된다.
제약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질병 퇴치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GSK는 장내 세균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할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존스 홉킨스대와 공동 연구를 통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을 억제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는 모기의 내장에서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라는 세균을 발견했다. 이 세균을 다른 모기에 주입했더니 역시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박테리아가 모기의 장에서 말라리아 기생 원충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알이 75%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