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의료 기기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의료 기기에 접목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의료 기기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6조1978억원이었던 국내 의료 기기 시장은 지난해 11조8782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제약사들 입장에서 의료 기기는 기존 의약품 사업과 관련성이 커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이미 구축해 둔 의약품 유통망을 통해 의료 기기를 판매할 수 있어 유리하다. 높은 의료 기기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과 손잡거나 기존 의료 기기 사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디지털·AI 의료 기기 회사와 손잡아
대웅제약은 다음 달부터 반지형 혈압 측정기 ‘카트BP’를 전국 병·의원에 유통할 예정이다. 카트BP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개발한 것으로, 24시간 혈압을 측정할 수 있다. 대웅제약이 보유한 고혈압, 고지혈증, 심부전 등 순환기계 의약품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지난 6월 전자약 개발 기업 뉴아인과 편두통 완화 의료 기기의 국내 독점 판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마에 붙여 미세전류 자극을 통해 편두통을 완화하는 의료 기기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뉴아인과 편두통, 안구건조증 등 만성질환 치료 기술 연구와 임상도 협력한다”며 “의약품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제약사들은 AI나 디지털 헬스케어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과 손잡고 있다. 안국약품은 보행 관련 데이터를 취득할 수 있는 솔티드의 디지털 웨어러블 의료 기기 ‘뉴로게이트 인솔’을 판매한다. 솔티드는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육성프로그램 C랩 1기 스핀오프 기업이다. 안국약품은 뷰노의 안저 영상 판독 보조 AI 제품 국내 판매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AI 기반 심전도계를 개발하는 휴이노에 50억원을 투자해 현재 2대 주주다.
◇분산된 의료 기기 사업부 하나로
제약사들은 자사 의료 기기 사업도 재정비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올해 초 그룹 내 JW바이오사이언스의 의료 기기 사업 부문을 양수했다. JW중외제약은 양수 이후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보육기(인큐베이터)’를 출시했다. 신생아의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산모의 체내와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의료 기기다. 휴온스그룹도 지난해 휴온스메디케어와 휴온스메디컬을 합병해 휴온스메디텍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분산돼 있던 의료 기기 사업을 합쳐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제약사들뿐 아니다. 의료 기기 사업은 IT(정보 기술)·유통 대기업들도 눈독 들이는 분야다. LG전자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의료 기기 제작 및 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며 본격 의료 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LG전자는 만성 통증 완화 의료 기기 ‘LG 메디페인’과 탈모 치료기 ‘LG 프라엘 메디헤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역시 사업 목적에 의료 기기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 화장품 판매와 더불어 의료 기기로 뷰티 분야 사업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은 제품 출시에 10년이 넘게 걸리고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역량도 선진국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IT와 제조 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제약사들의 의료 기기 사업 확대는 미래 먹거리뿐 아니라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