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카르텔’ 문제를 지적하며 R&D 예산 개선을 지시했지만, 정부·출연 연구소·교수·기업 등 과학기술계는 서로를 향해 카르텔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복마전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정부 R&D 예산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 분야 원로들과의 오찬에서 원로들이 R&D 카르텔을 언급했고, 윤 대통령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R&D 개선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R&D 카르텔이 예산 삭감을 촉발하자 과학기술계에서는 서로를 카르텔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대학이나 부처에서는 정부에서 막대한 돈을 지원받고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출연연이 카르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전국 100여 곳에 이르는 출연연 지역 분원은 출장 사무소로 전락했고, 기계연구원에서는 기술사업화 실장이 2014년부터 6년간 특허 등록 226건의 허위 서류를 만들어 67억원을 횡령한 사건도 있었다. 대학교수는 동료나 선후배에게 과제를 평가받고 예산을 나눠 먹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도 카르텔로 지적된다. 실제로 2015년부터 5년간 유사한 주제로 15회 이상 중복 지원을 받은 기업이 106개에 달한다. 본인들의 예산을 늘리려 타 부처와 중복이라도 과제를 무분별하게 뿌린 각 부처가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례로 반도체 인력 양성에 교육부는 540억원, 과기부 164억원, 산업부 150억원을 중복으로 지원했다. 하나의 집단을 콕 집어서 카르텔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과학계 전반에 퍼진 문제들이 모여 R&D 비효율화를 만든 셈이다. 카르텔 논란이 커지면서 정작 현장 연구자들은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 한 출연연 연구자는 “우리를 향해 카르텔이라고 하니 마치 큰 잘못을 한 범죄자가 된 느낌”이라며 “예산 삭감 타깃이 되면서 지금까지 해온 연구가 ‘별 볼일 없던 것이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