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국가 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제공

과학기술계 원로와 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을 계기로,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처럼 어떤 정권이냐에 관계없이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이어갈 수 있는 장기 기초과학 연구 플랜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는 “R&D 예산이 장기적인 원칙이나 목표 없이 늘었다, 줄었다 하니 결국 멀미가 나는 것”이라며 “다른 분야 예산과 다르게 적어도 5~10년간의 장기 목표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과 달리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R&D 예산을 꾸준히 올려야 하는 입장”이라며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을 첨단 기술로 정한 이상 약간의 누수가 있더라도 연구·개발이 끊기지 않도록 지원해 줘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과학기술계를 ‘연구 카르텔’로 규정하며 몰아붙여 설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과학기술 예산이 성역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재정 상황이 나빠지면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R&D도 중요하지만 국가 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고 부드럽게 설득하면 되는데 카르텔을 운운하며 모욕적으로 나와 시작부터 반발을 샀다”면서 “과학기술계를 도둑으로 몰며 폄하할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연구 예산 조정 방향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덕환 교수는 “과거에는 해외에 나가서 선진 연구를 배워오는 게 중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수소나 양자컴퓨터, 반도체 등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어 앞장서서 선도형 연구·개발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한민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 세계가 첨단 기술을 두고 피눈물 나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협력을 통해 외국의 좋은 기술을 배워오기는 쉽지 않다”며 “글로벌 연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내부 경쟁을 통해 질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