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혁신방안 발표하는 이종호 장관 -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연구비 카르텔’을 지적하며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던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산 조정 결과가 22일 발표됐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날 심의 회의를 개최하고 2024년도 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산을 21조5000억원으로 의결했다. 전년 대비 13.9% 줄어든 수치다. 주요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발표는 지난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연구비 카르텔’을 언급한 이후 두 달 만에 이루어졌다. 과학계에서는 그간 정부 출연 연구기관 예산과 기초 연구 예산 등 R&D 예산이 줄어들면 과학기술 발전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 R&D 예산이 무려 10조원 이상 늘어난 반면 R&D 시스템은 그대로였다”며 “낡은 R&D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내고 선도형 R&D로 나아가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성규

◇“눈먼 연구비 없애는 비효율의 효율화”

내년도 R&D 예산안은 2023년 대비 108개 사업, 3조4000억원이 줄어든 규모다. 특히 최근 2년간 급증했던 감염병,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관련 예산, ‘주인 있는 기획’, 뿌려 주기식 사업 등 문제 예산이 1조8300억원(전년 대비 76.2%) 감소했다. 해당 분야에서 꼭 필요한 5700억원만 남겼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예산안이 조정에 들어가며 최대 30%까지 감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던 정부 출연 연구원 예산은 올해보다 3000억원 감소한 2조1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주영창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은 “출연연 예산 감소율은 10%대로 전체 R&D 예산 감소율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연구기관 운영에 필수적인 인건비와 경상비는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고 했다.

반면 국가 전략 사업이자 미래 먹거리로 기대를 모으는 첨단 바이오, 인공지능, 사이버 보안, 양자, 반도체, 이차전지, 우주 등 7개 핵심 분야에 대해서는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이들 연구 분야의 내년도 예산은 5조원으로 올해 대비 6.3% 증가한 수준이다. 또 글로벌 인재 양성에 2조8000억원을 투입, 젊은 연구자들의 해외 연구 참여를 적극 지원키로 했다.

◇“연구 성과 상대평가, 예산 배분에 활용”

정부는 이날 R&D 제도 혁신안도 함께 공개했다. 그간 국내에 갇혀 있던 R&D를 해외 우수 기관과 협력해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과기정통부는 해외 우수 연구기관이 정부 R&D에 주관 및 공동 연구기관으로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연구비 카르텔’ 문제는 투명성을 확보하고 엄격하게 성과를 평가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해 해결할 예정이다. 현재 정부 R&D 과제를 관리하는 시스템인 IRIS를 2.0으로 업그레이드해 연구비 배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빅데이터·AI를 활용해 연구자 정보를 분석, ‘잘하는 연구자·기관’을 선정할 예정이다.

연구 성과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 조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대평가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연구 분야에 불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주 본부장은 “현재 부처별로 R&D 사업 평가 시 ‘미흡’을 주는 비율이 2.9%에 그치는데 이를 효율화해 필요한 사업에 투자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과학계의 반발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는 성명서를 내고 “R&D 예산 뿌려 주기, 나눠 주기 등의 잘못된 관행의 주범이 ‘연구비 카르텔’이라는 언급에 대해 그 근거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라”며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연구자들을 카르텔의 주범인 양 핍박하는 강압적이고 일방적 정책을 중단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