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가 찾는 대부분의 꽃은 방울꽃처럼 거꾸로 처지는 형태이다. 입구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벌새는 꿀을 마시는 동안 공중에 뜬 상태로 1초에 80번이나 날갯짓을 해야 한다. 벌새의 제자리비행은 모든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칼로리 집약적인 움직임이다.
하지만 일부 벌새는 발로 꽃을 잡은 채 편하게 꿀을 마시면서, 식물의 수분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 ‘영악한’ 존재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아메리칸 내셔널리스트’ 최신호 논문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꿀을 섭취하는 벌새 종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벌새는 꽃과 일종의 공생관계다. 벌새가 꿀을 마시기 위해 꽃에 부리를 꽂는 동안 식물의 꽃가루가 벌새의 머리에 붙고, 다른 꽃에서 꿀을 마실 때 수분이 이뤄지는 식이다.
연구팀은 사진·비디오·논문 등을 통해 가능한 모든 벌새의 행동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330종에 이르는 벌새 가운데 66종이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공중에 떠 있는 대신 발로 줄기나 꽃을 붙잡은 뒤 좀 더 편하게 꿀을 마셨다. 이 새들은 모두 부리가 짧았고, 발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연구팀은 “이 벌새들은 다른 벌새가 접근하기 힘든 긴 관 모양 꽃에 부리를 찔러넣으며 꿀을 마셨다”면서 “특히 이 과정에서 꽃가루가 머리에 묻지 않기 때문에 수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꽃과의 공생을 깨고 꿀을 훔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벌새의 행동이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벌새는 생존을 위해 매일 자기 체중에 육박하는 꿀을 마셔야 한다. 더 작은 움직임으로 더 편하게 많은 꿀을 마실 수 있도록 부리와 발이 진화했고, 다른 벌새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