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을 계기로 외과 지원이 활성화돼서 외과의사들이 임상과 연구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제22회 보령암학술상 수상자인 정승용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교수는 지난 19일 “개인적인 성과라기보다 여러 선생님과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이 적극 도와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보령암학술상은 암 퇴치를 위한 연구로 국민 보건 향상에 헌신한 학자를 기리기 위해 한국암연구재단과 함께 2002년 제정해 국내 종양학 분야 최고 권위 상으로 인정받아 왔다.
정 교수는 대장암 치료와 임상을 통해 대장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특히 지난 2014년 국제 학술지 ‘랜싯 온콜로지’를 통해 직장암에서 복강경 수술이 개복 수술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후에도 장기간 추적 관찰을 통해 직장암 복강경 수술이 표준수술법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 교수는 1989년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대장암센터장, 서울대학교암병원 대장암센터장, 보라매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장암 예방 위해 ‘1·3·5′를 기억하라
대장암은 ‘침묵의 병’이라 불린다. 증상으로 발병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평소 자신의 대장 건강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정 교수는 “오른쪽 아랫배 쪽 대장에 암이 발병하면 통증 등 증상이 없는 대신 체중이 빠지고 빈혈이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간접 증상이 생기며, 암이 항문에 가까운 쪽에 생길수록 피가 비치고 변비가 생기는 등 직접적인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대장암 발병 여부를 알아채기 힘든 만큼 정기검진이 중요하다. 정 교수는 “대장암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해 ‘1·3·5′를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기검진을 통해 대장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용종이 발견되면 1년 후 재검진을 해야 하고, 저위험 용종이면 3년 후 재검진, 정상 판정을 받으면 5년 후 재검진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3·5·10 주기를 권장하지만 정상 판정을 받더라도 10년 안에 다른 위험이 발견될 수 있는 만큼 자주 검진을 받는 게 좋다.
한국의 대장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4.3%다. 정 교수는 “미국의사협회지 ‘자마(JAMA)’에 따르면 한국의 대장암 생존율은 전 세계 상위권”이라면서 “정기검진만 잘 받으면 국내에서는 대장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생존율이 높다”고 했다. 다만 식생활 변화로 인해 30대와 40대에서 대장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는 “대장암 위험을 낮추는 유일한 길은 운동”이라며 “젊은층도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번아웃에 빠진 외과… ”다음 세대가 없다”
정 교수는 독일 출신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을 읽으며 의사를 꿈꿨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으로 가득 찬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외과의사 라비크의 낭만적인 사랑과 전쟁의 현실을 그린 소설이다. 정 교수 본인은 라비크를 따라 외과의사의 길을 걷게 됐지만 “정작 지금은 낭만으로는 외과의사가 되기 힘든 현실”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외과의사가 부족해 이미 의료 체계가 붕괴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곧 충수염처럼 발생 빈도가 높은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수술을 하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나올 것”이라면서 “이제 지방에는 야간 당직을 서는 외과의사가 없다. 서울에서도 응급 환자의 경우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어떻게든 대응하고 있지만, 바통을 이어받을 다음 세대가 없어 앞으로 치료만 받으면 생존할 수 있는 응급 질환에서도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임상으로 얻은 데이터를 학문적으로 연결하고, 이렇게 발전된 연구 결과를 임상에 적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지만, 외과의사들이 매일 환자보기 급급하다 보니 연구를 위한 시간을 내기도 버겁다”고 했다. 그는 “진료 보고 야간 대기하고 응급 콜 받다 보면 연구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온종일 지치고 그다음에 연구한다는 건 초인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이전 선배들은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지금 세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현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더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