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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항암제 전문 바이오 기업인 씨젠을 430억달러(약 56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인수합병(M&A)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제약 업계에서 가장 큰 M&A 거래다. 화이자는 당시 “암과 싸우기 위해 43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며 “씨젠의 약물들과 임상 후반기에 있는 프로그램들, 그리고 항체 약물 접합체(ADC) 분야의 선구적인 전문 지식은 화이자의 종양 분야 포트폴리오를 강력하게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급격한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주춤했던 제약·바이오 분야 M&A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법) 시행, 2026년을 전후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연 매출액 10억달러 이상인 약물) 특허 만료를 앞두고 적극적인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 업계의 이런 변화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의 신약 후보 물질 기술 이전과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라인업 확대 등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활기 띠는 글로벌 제약, 바이오 M&A 시장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M&A와 전략적 제휴에 나서고 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5억달러 이상 거래를 기준으로 2022년 M&A는 39건이었고, 올해도 5월까지 17건이었다. 이 기간 전략적 제휴도 40건이나 체결됐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M&A 및 전략적 제휴 건수는 2021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다가 지난해 고금리 상황에서 20% 감소했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수혜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쌓아둔 자금이 늘어난 만큼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가용 자금은 지난해 1조4270달러로 2020년 대비 38% 급증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탄생한 글로벌 제약사의 대형 신약들은 M&A를 통해 벤처기업의 원천 기술을 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지난 2018년 아벡시스를 87억달러에 인수해 희소 질환 치료제 ‘졸겐스마’를 확보했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유전자 치료제인 졸겐스마는 평생 1회 투약으로 SMA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신 가격이 25억원(미국 기준)에 이른다.

그래픽=이진영
올해 미국 특허가 만료되는 에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 휴미라 같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약물의 특허가 잇따라 만료되면서 국내 바이오 시밀러 회사들의 시장 공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에브비 홈페이지 캡처

◇IRA법, 블록버스터 특허 만료에 글로벌 제약사 ‘흔들’

글로벌 제약사들이 공격적인 M&A에 나서는 것은 외부 환경 변화에 의해 불가피한 매출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난관은 2026년 전후로 몰려오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다. 올해 미국에서 특허가 만료되는 에브비의 ‘휴미라’와 J&J의 ‘스텔라라’, 리네제론의 ‘아일리아’ 등 3개 의약품만 해도 연간 글로벌 매출액이 40조원(2021년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미국 머크(MSD) ‘키트루다’, BMS ‘엘리퀴스’ 등도 2028년과 2026년에 특허가 풀린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악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발표된 IRA법에는 고령자들이 주로 구매하는 핵심 의약품 10개에 대해 연방정부가 직접 제약 회사와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약값을 인하해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제약사가 이를 거부하면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 제약사인 머크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미국 제약 연구 및 제조사협회(PhRMA) 등이 바이든 행정부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제약 업계의 반발이 크지만 시행된다면 글로벌 제약사의 핵심 품목은 2026년부터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은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등 국내 바이오 시밀러 회사들의 시장 공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미 유럽 등 바이오 시밀러를 선호하는 지역에서는 매년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의 시장 점유율이 급등하고 있다. 또 면역 항암제 등 국내 바이오 업체들이 개발하고 있는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해서도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이 높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대한 많은 후보 물질을 입도선매한 뒤 그 가운데 시장성이 높은 제품을 발굴하는 전략을 고수한다”면서 “이미 상당수 바이오 기업들이 기술 이전 또는 M&A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