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 유속이 조금만 느리거나 빨라지면 미세조류가 바닥에 붙어 전부 썩어버립니다. 이 유속을 잡는 데만 2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13일 제주 구좌읍에 위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주연구소 박흥식 소장은 “이스라엘까지 가서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로 미세조류를 키우는 시설을 눈으로 보고 외워 한국서 실증 실험을 이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소장이 가리킨 ‘미세조류 생산 실증시설’에는 타원형 수조에 초록색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조에는 지름 80㎝ 정도의 물레방아가 15rpm 속도로 쉴 새 없이 돌면서 유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주 용암해수가 채워진 수조는 우주식품으로 잘 알려진 미세조류 ‘스피룰리나(Spirulina)’를 배양하는 시설로 보름에 한 번씩 물에서 스피룰리나를 걸러내 수확하고 있다.
제주에는 국내 해양생물의 51%가 서식할 정도로 해양 자원이 풍부하다. KIOST 제주연구소의 바이오연구센터가 해양 바이오 연구의 중심이 된 이유기도 하다. 바이오연구센터에서는 해양생물에게서 유래한 항생제나 백신을 개발하거나 생선뼈나 비늘과 같은 부산물을 의약품이나 화장품으로 탈바꿈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강도형 KIOST 원장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환경문제를 발굴해 바이오 기술로 돌파해 나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험실에서 빠져나와 해양 개척에 나서야”
박흥식 소장은 “해양 연구가 실험실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라고 했다. 해양 연구가 ‘탐험’에서 ‘개척’으로 변해야 민간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부터 연구해온 스피룰리나가 신호탄이다. 스피룰리나는 단백질과 영양분이 풍부하고 방사능 체외 배출에도 효과가 있다. 미 시장조사 업체 밴티지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스피룰리나 분말 시장 규모는 매년 9.8%씩 성장해 2030년 1조45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연구소는 스피룰리나 대량생산을 위해 ‘해양 미세 조류 파운드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실험실에 머물던 스피룰리나 기술을 산업화하는 첫걸음이다. 박 소장은 “전 세계 스피룰리나의 약 13%를 생산하는 미 하와이 파운드리보다 효율이 2.5배 높은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제주연구소는 스피룰리나 상업화를 위한 기반 생태계를 만들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뒤 듀나렐라 등 다른 미세조류 연구로 확장하며 연구와 상업화의 선순환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스피룰리나는 주로 항산화와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 등의 효과를 이용한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으로 제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화학 업체 DIC가 식품용 스피룰리나 천연 청색 색소 ‘리나부루’의 생산을 위해 1658억원을 투자하는 등 색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KIOST 연구팀이 스피룰리나에서 추출한 ‘SM70EE’가 기억력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임상으로 입증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도 받았다.
◇기후변화 연구의 첨병
제주도는 한국의 최남단에 위치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 온도는 지난 40년간 1.03℃ 상승하며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해안을 잠식하고 있는 구멍갈파래다. 백사장을 점령한 구멍갈파래가 하얗게 부패해 악취를 풍기고 벌레가 꼬이며 다른 생물의 서식까지 방해하고 있다. 따뜻해진 제주 바다를 따라 남태평양 산호들이 제주 앞바다까지 올라오며 생태계 근간을 바꾸고 있기도 하다.
제주연구소는 미세조류를 비롯해 기후변화로 인해 새롭게 나타나는 생물을 배양·연구하기 위한 ‘스마트 복합해양배양센터’를 2024년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해생물의 확산을 막는 기술도 개발한다. 박 소장은 “지금껏 관심을 갖지 않던 해양생물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는가 하면, 유해성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연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스피룰리나
해양에 서식하는 미세조류의 일종으로 나선형으로 길게 꼬인 형태다. 철분은 시금치의 50배, 단백질은 달걀의 5배 수준으로 함유하고 있어 건강기능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면역력 상승과 방사능 체외 배출에도 효과가 있어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 식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