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팬데믹의 유산이 무엇일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00년 전 인류가 겪은 다른 팬데믹의 경험을 되짚어 본다면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초부터 2~3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로 인한 사망자는 약 5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총 전사자 약 1000만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이 질병은 전장을 경유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다(스페인만 사망 통계를 공개해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됐다).

그 과정에서 일부 병원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와 만주를 거쳐 1918년 9월 한반도 북부에 도달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조선에서 스페인 독감은 1920년 봄까지 크게 유행했다. 조선총독부 집계에 따르면 약 756만명, 전체 인구의 44.3%가 감염됐고 그중 약 14만명이 사망했다. 물론 실제는 이보다 더 많다.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례가 빈번했고 쏟아지는 시체를 처리하느라 화장터의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 독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조명되기 전까지는 ‘잊힌 질병’이었다. 대중에게 한반도의 스페인 독감이 어땠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이 잊힌 이유도 불분명하다. 3·1 운동처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다른 정치적 사건들에 묻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조선의 감염병 관리 체계에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스페인 독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개인 위생을 유지하고 타인과의 접촉에 유의하라는 통상적인 권고를 했을 뿐이다.

박지영 인제대 의대 교수

그럼에도 조선의 스페인 독감 경험 중 현재까지 지속되는 유산이 있다. 마스크 착용 문화이다. 마스크는 스페인 독감의 예방 수단 중 하나로 조선에 도입됐다. 거즈를 귀에 걸어 입과 코를 덮는 이 도구는 조선인들에게 낯설고 불편했다. 조선 언론과 의사들은 가정주부를 독자로 하는 신문 코너와 계몽 잡지에 ‘마스크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따뜻하게 유지함으로써 호흡기를 보호한다’고 활발히 선전했다. 이들의 노력 덕에 마스크는 일반 가정에 널리 수용됐다. 이렇게 형성된 마스크 착용 문화는 오늘날 자발적인 마스크 방역의 기원이 됐다. 이처럼 팬데믹의 경험은 훗날 질병을 대하는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이 코로나19가 잦아드는 지금 우리의 경험 중 무엇을 남겨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