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22일(현지 시각) 미국 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JAMA 네트워크’에 먹는 비만 치료제 임상 시험 2상 결과를 발표했다. 화이자는 제2형 당뇨병 환자 411명을 대상으로 신약 ‘다누글리프론’의 효능을 시험했다. 이들은 하루에 알약을 두 번 복용했다. 그 결과 다누글리프론을 복용한 사람들은 16주 후 체중이 평균 4.5㎏ 감소했다. 로이터통신은 “현재 나온 다른 비만 치료제와 비슷한 효능”이라고 했다. 특히 알약 형태인 화이자의 신약은 주사제 방식인 기존 치료제보다 훨씬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체중 감량에 걸리는 기간도 더 짧았다. 소식이 전해지며 이날 화이자의 주가는 전날보다 5.4% 상승 마감했다.
글로벌 제약 업계에서 비만 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비만 인구가 급증하면서 관련 치료제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24억 달러(약 3조원)였던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30년 5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비만이 게으른 사람들이 얻는 대가가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노보노디스크도 알약 개발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도 화이자와 같은 날 먹는 비만 치료제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비만 환자 66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알약을 먹은 사람들은 68주 후 평균 15% 체중이 줄었다. 반면 위약을 복용한 사람들은 평균 2.4% 감소에 그쳤다. 이는 노보노디스크가 판매하고 있는 주사 형태 치료제 ‘위고비’와 비슷한 효능이다. 위고비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용하며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비만 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앞선 곳은 노보노디스크다. 노보노디스크는 매일 1회씩 맞던 주사를 1주에 1회로 줄이고 효과도 좋은 ‘위고비’를 허가받았다. 임상 결과 위고비는 68주 동안 평균 15㎏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회사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도 체중 감량용으로 쓰이고 있다. 오젬픽도 임상 3상에서 30주 동안 참가자들의 체중이 4.5㎏ 감소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임상 3상 결과 ‘마운자로’는 72주 동안 참가자의 체중을 최대 15.7% 감소시켰다. 위고비와 오젬픽 등은 ‘꿈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며 당뇨 환자들이 처방을 받지 못할 정도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다만 고가인 데다 약을 끊는 순간 체중이 대부분 돌아오는 한계가 있다.
◇심장병·치매도 치료?
최근 나온 비만 치료제는 인체 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이라는 호르몬에 작용해 뇌에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보낸다. 포만감을 느껴 식욕을 억제하면서 살이 빠지도록 하는 원리이다. 원래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낮추는 당뇨병 약으로 쓰였다.
당뇨 치료제의 주요 성분으로 당뇨병·비만 이외에 다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진은 위고비와 오젬픽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지 1년 된 사람들의 10년 뒤 건강을 예측했다. 그 결과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이 7.6%에서 6.3%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진은 9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 때문에 대규모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덴마크 노르셸란드 병원 연구진은 5년 동안 제2형 당뇨병 환자를 추적한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사람들의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낮은 것을 발견했다. 제2형 당뇨병이 혈관성 치매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세마글루타이드를 통해 발병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